노동 인구 부족과 ‘쉬었음 청년’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
한국 사회에는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다.
한쪽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제조업도 사람이 없고, 농어촌도 사람이 없고, 건설현장도 사람이 없다. 기업들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 확대를 해법으로 내놓는다.
실제로 외국인 취업자는 계속 증가해 2025년 5월 기준 101만 명을 넘어섰고, 정부는 산업현장의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인력 활용을 더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또 다른 통계가 발표된다. 청년들이 쉬고 있다.
단순한 실업이 아니라, 구직도 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도 않은 채 멈춰 서 있는 청년들이 늘어난다.
통계청은 2025년 청년층 실업률 상승과 함께 ‘쉬었음’ 증가를 확인했고, 고용노동부는 2026년 3월 발표에서 청년 ‘쉬었음’이 70만 명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즉 지금 한국은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회이면서, 동시에 노동시장 밖에서 멈춰 선 청년이 늘어나는 사회이기도 하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노동 인구가 부족한 사회에서, 정작 청년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지 않고 쉬고 있는가. 고전적 인구이동 이론으로 보면, 이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마이클 토다로(Michael Todaro, 1969)는 「A Model of Labor Migration and Urban Unemployment in Less Developed Countries」(저개발국의 노동이동과 도시실업 모형)에서 사람들이 실제 임금이 아니라 기대소득을 보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토다로에게 도시란 단지 현재 일자리가 있는 곳이 아니라, 더 높은 미래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도시 실업이 존재해도 농촌 청년의 도시 이동은 계속될 수 있었다.
이 이론을 지금 한국에 대입하면, 지방 청년들이 여전히 수도권과 대도시로 향하는 현상 자체는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늘의 한국 청년은 도시로 이동한 뒤 곧바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지금 한국은 더 이상 단순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동 경제학이 아니라,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집중된 뒤 노동시장 진입을 유예하는 경제학에 가까워졌다. 청년에게 오늘의 도시는 곧바로 일하는 장소라기보다, 일단 버티는 장소가 되었다. 스펙을 더 쌓고, 시험을 더 준비하고, 더 나은 일자리가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 말이다.
이 지점을 이해하려면 기대소득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기대경로를 보아야 한다. 청년들은 단순히 “일자리가 있느냐”를 묻지 않는다. 그 일자리가 커리어로 이어지는지, 이력서에 도움이 되는지,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지, 그리고 계속 버틸 수 있는 임금과 조건을 제공하는지를 함께 본다. 그래서 도시에 일자리가 있어도 그것이 청년 입장에서는 들어갈 만한 일자리가 아닐 수 있다.
반대로 지방에 사람이 급한 일자리가 많아도 그것이 장기적 경로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진입하지 않는다. 한국의 문제는 일자리의 절대량 부족이라기보다, 청년이 기다리는 일자리와 실제 비어 있는 일자리 사이의 질적 간극에 있다.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유보임금 개념도 중요하다. 경제학에서 유보임금은 개인이 노동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뜻한다. 청년들이 모두 고임금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낮은 임금에 더해 불안정한 고용, 경력 축적의 어려움, 낮은 사회적 인정까지 함께 얹혀 있는 일자리라면 노동시장 진입을 미루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어중간한 일자리에 들어가 경력이 꼬이느니 차라리 준비를 더 하겠다”는 계산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선택일 수 있다. 여기서 마이클 피오레(Michael Piore, 1979)는 『Birds of Passage: Migrant Labor and Industrial Societies』(철새 노동자: 이주노동과 산업사회)에서 설명한 이중 노동시장 이론이 큰 설명력을 가진다.
피오레는 노동시장이 안정적이고 지위가 높은 1차 시장과, 저임금·불안정·낮은 사회적 평가가 결합된 2차 시장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주노동은 단지 자국 노동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국 노동자가 그 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걸 한국에 대입하면 구조는 분명해진다. 지금 한국의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1차 노동시장 일자리는 부족하고, 외국인력으로 메우는 2차 노동시장 일자리는 많다. 그래서 기업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청년은 “갈 만한 일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이 두 말은 서로 반대되는 주장이 아니라, 같은 구조를 다른 자리에서 묘사한 문장이다. 외국인력이 빠르게 유입되는 현장 상당수는 제조, 농축산, 건설, 돌봄 등 청년이 장기 경력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외국인력 확대는 단기적으로 산업현장의 빈 의자를 채우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지금 많은 업종은 외국인력 없이는 돌아가지 않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외국인력이 지속적으로 2차 노동시장을 메우면, 해당 직군의 임금과 처우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려야 할 압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면 내국인 청년은 더더욱 그 일자리를 외면하게 되고, 해당 직종은 더욱 외국인력 의존적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 즉 외국인력 확대는 단기적 보완재일 수 있지만, 설계가 정교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는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외국인력 제도를 확대하면서도 내국인 청년과의 관계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 쪽에서는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도시가 더 이상 즉시 고용의 장소가 아니라 대기의 장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토다로 모형에서도 도시 실업은 일종의 대기열로 볼 수 있었지만, 오늘 한국 청년의 ‘쉬었음’은 단순 실업보다 더 복잡하다. 고용노동부가 ‘쉬었음, 구직, 재직 청년’을 구분해 별도 지원정책을 운용하는 것 자체가 이 점을 보여준다. ‘쉬었음’은 단순히 일자리가 아직 없다는 뜻이 아니라, 구직 자체를 멈추거나 유예한 상태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로버트 K. 머턴(Robert K. Merton, 1938)은 「Social Structure and Anomie」(사회구조와 아노미)에서 제시한 설명이 중요해진다. 머턴은 사회가 문화적으로는 성공의 목표를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그것에 도달할 제도적 수단을 고르게 제공하지 못할 때 개인이 여러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보았다. 그중 하나가 도피(Retreatism)이다. 이는 사회가 제시한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을 동시에 포기하거나 이탈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오늘 한국의 일부 ‘쉬었음 청년’은 바로 이 구조적 도피의 징후로 읽을 수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된 경력, 수도권 정착, 자기계발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목표로 나아가는 수단은 매우 좁고 비싸며 경쟁적이다. 높은 주거비, 긴 준비 기간, 낮은 초기 보상, 불안정한 고용 구조는 청년에게 “일단 들어가 보라”는 말을 설득력 없게 만든다. 그 결과 일부 청년은 경쟁을 계속하기보다 노동시장 바깥으로 한 걸음 물러난다. 이것은 단지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피로의 축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이탈은 다시 경제 전체의 손실로 돌아온다. 청년기에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되면 실무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이력 공백은 이후 취업 기회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흔히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즉 한 번 발생한 실업·비참여의 흔적이 장기적으로 남아 이후 노동시장 복귀를 더 어렵게 만드는 효과로 설명된다.
한국의 ‘쉬었음 청년’ 문제는 단순한 일시적 휴식이 아니라, 미래의 인적 자본을 잠식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 인구 부족과 청년 비참여가 동시에 심화되면, 세수 기반은 약해지고 복지 부담은 커지며 성장의 토대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하나의 잔혹한 역설로 요약된다. 산업현장의 빈 의자는 낯선 발걸음, 즉 외국인 노동자가 채운다. 반면 도시의 카페와 도서관에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 청년들이 앉아 있다. 하나는 노동력 부족의 표지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시장 연결 실패의 표지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은 구조의 양면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자리 숫자 늘리기가 아니다. 청년들이 유보임금을 지나치게 높게 잡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외국인력 확대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도 모두 절반만 맞는 해법이다. 필요한 것은 사람과 일자리의 연결고리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만한 질의 일자리를 확대하고, 도시 거주 비용이 취업 자체의 장벽이 되지 않도록 주거 부담을 낮추며, 외국인력을 내국인 청년과 단순 대체 관계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보완 관계로 설계해야 한다. 교육은 교육대로, 이민정책은 이민정책대로, 노동정책은 노동정책대로 흩어져 움직여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이 셋을 하나의 구조로 묶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의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어떤 일자리는 사람이 없고, 왜 어떤 청년은 노동시장 밖에 머무르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같은 장면은 반복될 것이다.
공장에는 사람이 없고, 도시에는 청년이 쉬고 있는 사회. 한국의 문제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기다리는 일자리와 사회가 비워 둔 일자리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조금 더 날카롭게 말하면 이렇다.
한국 노동시장의 비극은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사람과 일자리가 서로를 원하지 않게 된 구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