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생활이다
배경 : 중장기발전계획 같은 미래지향형 연구용역을 수행하다 보면 터무니없는 요구와 직면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우리 지역에 인구가 몇 명이나 증가할 수 있는지 추정해 보라는 주문이 특히 그렇다.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이 있다. "무슨 생각으로 단체장을 하고 있는 거지?"
이 글은 현실을 모르고 꿈만 추구하는 일부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출산장려금, 신혼부부 행복패키지, 육아수당, 주거지원, 청년지원, 다자녀 혜택 등 수많은 인구정책을 쏟아냈다. 정책만 보면 우리나라는 산유국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무슨 돈이 있어서 ‘태어나기만 하면 돈이 쏟아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지?
그런데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고, 인구는 줄어들었고, 지방은 더 빠르게 텅 비어 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많은 정책을 쏟아냈는데, 왜 인구는 늘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책은 많았지만, 삶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대부분은 이런 전제를 깔고 있다.
'사람들은 원래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그런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못 낳는 것이므로 돈을 주면 출산을 선택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 청년들은 “돈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이 돈이 없던 시절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낭만'이 없다. 삶을 기대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돈 몇 백만 원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거는 비싸고 노동은 불안정하고 돌봄은 사적인 책임으로 남아 있고 아이 한 명 키우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이 상황에서 100만 원, 200만 원을 준다고 해서 사람들은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정책은 ‘동기’를 설계했지만, 현실은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구정책은 돈이 아니다. 주거와 일자리, 돌봄과 교육, 안전과 공동체 등 삶을 구성하는 기반들이다. 삶이 안정되면 자연스럽게 선택은 따라오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갔다. 삶의 기반은 불안하고 미래는 불투명하고 도시는 비싸고 지방은 기회가 없고 그 빈 공간만 정책으로 메꾸려 했다. 삶이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이 왜 인생을 바꿔야 하나?
지방의 인구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특히 지방의 인구정책은 더 안쓰럽다. 한 마을이 사라지고 있는데 “전입신고 하면 10만 원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절규다. 지방의 문제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 이유가 없어서 발생한다.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병원은 멀고 대중교통은 끊기고 일자리는 재정사업에 의존하고 문화는 없고 청년은 없다. 이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건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문제다. 가능성이 없는 곳에 사람은 머물지 않는다. 유입도 발생하지 않는다.
‘출산율 0.78 → 1.0’, ‘전입 인구 증가율 +5%’, ‘신혼부부 유입 300명’ 등등 정책은 사람을 하나의 숫자로 다뤘다. 숫자로 관리하면 숫자가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사람은 조건이 아니라 삶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삶은 절대 일회성 지원으로 바뀌지 않는다. 정책은 혜택을 주었지만 삶의 구조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실패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게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을 유입시킬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도 된다고 느끼는가?”, “이 지역의 삶은 충분히 안전하고 의미 있는가?”, “부모가 되고 싶은 삶을 국가가 지켜줄 수 있는가?”, “공동체는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정책이 만들어져도 움직이지 않는다.
인구정책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품격이다. 결국 인구정책은 삶의 품격에 대한 정책이다. 사람이 살아도 좋은 공간, 기대할 수 있는 미래, 돌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곧 정책이다. 인구는 ‘출산 장려금’이 아니라 삶의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인구증가정책은 실패했다. 숫자를 늘리는 데만 집중했지,
사람이 버티는 조건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필요한 건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다.
사람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지만 돈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삶으로, 안정으로 안정으로 움직인다.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움직인다.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그 확신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두지 말고 사람이 머무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늘고 줄고는 그다음이다.
최근 중장기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특정 지자체에서 2040년까지 인구 160만 명을 유치하겠다고 시장이 공언한 적이 있다. 최근 100만 인구를 달성하여 특례시를 추진하던 이 지역은 인구가 98만 명 밖에 되지 않아 외국인 인구까지 영끌해서 겨우 100만 명을 맞춰놓은 상태에서 나온 선언이라 난 귀를 의심했었다.
지역내부에서도 인구격차로 인해 몇몇 지역은 지방소멸지수가 지방시군만큼 높은 상황에서 내부점검이 아니라 실언을 자신 있게 하고 다니는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