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는 그녀

우리에게 술자리는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이었다.

by NaeilR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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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좋아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

사람은 보통 말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어떤 표정, 어떤 습관, 어떤 순간 때문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나에게는 술을 좋아하는 그녀의 작은 행동들이 그랬다. 그녀는 술을 단순한 음료로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술을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처럼 마셨다. 그리고 나는 그 의식에 조금씩 초대되었다.


첫 번째 그림 속 그녀는 유자향이 가득한 술병을 얼굴 절반 가리듯 들고 있다. 쑥스러운 듯 보이지만, 숨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유자주의 향처럼, 겉은 상큼하고 가볍지만 그 속에는 깊고 묵직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걸 굳이 말로 꺼내지 않는다. 대신 술 한잔의 여유 속에서 조용히 하루를 녹여냈다.


두 번째 그림 속 그녀는 사케 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 표정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얼굴이다. 아마도 함께 마실 사람을 떠올리거나, 혹은 오늘 하루 스스로를 칭찬하기 위한 순간일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술은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이다. 술병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이지만 실은 그녀가 진짜 좋아하는 건 사람들의 이야기, 말 없는 위로, 조용한 공감일 것이다.


술은 그걸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도구일 뿐이다. 술이 있으면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자신과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그녀는 알코올이 아니라 사람을 더 좋아한다.


□ 이제 그녀가 없으면 술이 달지 않다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술을 마셔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고 2년여 기간 동안 내가 그녀와 술을 마시는 이유는 그녀가 곁에 있을 때의 공기, 온기, 대화의 리듬, 호흡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없는 공간은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술은 쓰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과정이 처음에는 술이었지만, 이제는 나의 모든 것이 되었다.

술을 좋아하는 그녀는 술보다 더 진하게 하루를 살아냈고, 그래서 나는 술이 아니라 그녀에게 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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