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계속 찜찜할까?
주말에 그녀와 싸웠다. 석고대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말끔하게 끝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분명 대화는 했고, 사과도 했고, 겉으로는 지나간 일처럼 보이는데 마음 한쪽에 뭔가가 계속 남아 있었다.
왜 그럴까. 사실 우리는 오늘, 3월 30일까지 1065일을 만나는 동안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내가 혼나는 정도였고, 그마저도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도 그녀도 요즘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고, 그러다 보니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작은 선에도 서로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사람은 지치면 원래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흔들린다.
상대가 잘못해서라기보다, 내 안에 버틸 힘이 부족해져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웃고 넘길 수 있는 말도, 피곤한 날에는 서운함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싸움의 원인을 그날의 대화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날의 말은 그냥 불씨였을 뿐이고, 그 아래에는 이미 피로와 부담이 오래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나이다. 이제는 서로 젊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시간을 마냥 흘려보낼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하루라도 빨리 뭔가를 결정해야 하고, 서로의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그녀를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더 능력이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빨리 자리를 잡았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긴 시간을 견디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아마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 때문에 그녀가 가끔 서운해해도, 아쉬운 게 있어도, 나는 그걸 하나의 감정으로만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서운함은 서운함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내 부족함에 대한 판결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겉으로는 무던하게 넘긴 것 같았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계속 쌓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의 찜찜함은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싸움이 끝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싸움이 건드린 것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안함, 조급함, 책임감, 불안.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기 때문에 사과 몇 마디로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 것 같다.
관계는 싸우지 않는다고 건강한 게 아니다. 오히려 싸움이 드물수록, 한 번의 균열이 더 깊은 데를 건드릴 때가 있다. 큰소리보다 더 무서운 건, 말은 끝났는데 마음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찜찜함은 그녀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그녀를 아직도 충분히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나 자신의 무능함에서 오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제일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