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저 그런 하루!
내일까지 추경 자료를 담당자별로 정리해서 Y에게 넘겨야 했다. 문제는, 나는 그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제부터 더듬더듬 뭔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국장님께 털렸다.
오후에 다시 더듬더듬 만들어 이번에는 Y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Y님, 이것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 지금 제 일하고 있잖아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맞나. 경리의 일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경리가 할 말이 저건가. 정말 신박한 개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나이라더니, 그 나이를 어디로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참 나잇값을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이거 빵꾸 나면 내가 욕을 먹을까?
그런데 곧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내가 잘 모른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물어봤다. 물어봤는데 안 알려준 건 그녀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빵꾸를 내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는 모르는 사람이 문제라기보다, 알면서도 안 알려주는 사람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탈곡된 낱알을 다시 주워 담듯 자료를 정리해 본청에 보냈다. 얼마나 빠꾸를 당할지보다, 일단 털어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건 또 다른 ‘나의 일’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정리됐다. 욕심부리지 말자. 어차피 내가 욕심을 부려 뭔가를 개선해도 그건 결국 내 일이 된다. 누구도 같이 짊어져주지 않는 나만의 일이라면, 굳이 애써 더 좋게 만들 이유도 없다. 그냥 작년처럼. 그냥 하던 만큼만. 그냥 문제만 안 생기게. 이렇게 하나를 내려놓으니 오히려 일이 수월해졌다.
퇴근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5시 45분쯤, 나는 일을 마무리했다. 남은 건 내일 와서 하자. 오늘은 그냥 유유히 퇴근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놈’이 나를 잡았다.
“어디 가세요? 지금 칼퇴?”
“네. 약속이 있습니다.”
“아… 칼퇴….”
속으로 생각했다.
'응, 칼퇴. 이 어린양아.'
오늘은 정말 그저 그런 하루였다. 그래도 오늘 배운 게 하나있다.
안 알려주면서 결과를 묻는 조직에서는 열심히보다 적당히가 더 오래한다. 욕심을 버리면 일이 쉬워지고, 그 순간부터 이 조직은 버티기 좋은 곳이 된다.
fair-i=far.
공정에서 나를 빼버렸더니 이상하게도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