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79-1

퍼즐이 맞춰진 느낌

by NaeilRnC

안개운전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칠흑같은 어둠은 라이트를 켜면 밝아지지만, 안개는 무섭다.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아도, 안개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흐리게 만든다.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는 계속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표정만은 또렷했다. 최근에 그만둔 선임대리와 어제 대리로 승급한 사원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대리님이 그만둔다고 하면 잡을 수는 없지만, 그만둘 결심을 하셨다면 최소한 한 달 전에는 알려주세요.”


처음엔 그 말이 좀 신기했다. 원래 퇴사라는 건 내가 짐을 싸고 나가면 그날부터 끝 아닌가. 그런데 왜 굳이 한 달 전에 알려달라고 할까. 조금 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내가 나가면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엿되는 구조였다. 오늘 오전 추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Y가 신경질을 내며 내게 와서 물었다.


“아니, 예산이 3천인데 지금 다른 걸로도 나갈 돈이 빠듯한데, 도대체 2천을 유지보수로 잡은 이유가 뭐죠?”
“네?”
“아... 대리님 사업 담당자잖아요. 근데 3천 중에 얼마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직도 몰라요?”


내가 모르는 건 사실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공유도 안 하고 모르는 걸 탓하는 건 또 뭐지. 도대체 이놈의 회사는 제대로 된 공유도 없으면서 담당자만 쪼아댄다. 그런데 갑자기 Y의 태세가 바뀌었다. 평소 같았으면 더 몰아붙였을 사람이 오늘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 번만 얘기할게요. 자, 이제부터 뭔가 내 일이 아닌데 시설, 유지, 관리, 보수가 나오면 그냥 ‘아, 또 내 일이구나’ 하셔야 서로 편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내 빵꾸는 내 빵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나의 빵꾸는 모두의 빵꾸였다. 모든 프로세스는 결국 나에게로 집중되는 구조였다. 어쩐지 이상했다.


전임자가 4년을 일하고도 런을 친 이유.
국장님이 내가 나갈까 봐 안절부절하던 이유.
팀장님이 내가 나갈까 봐 엄지척을 날리던 이유.
신규 대리가 친하게 지내자고 하던 이유.
그리고 요즘 ‘그놈’이 내게 일을 쉽게 던지지 않는 이유.


순간, 모든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결국 내 역할은 이 조직에서 댐과 같은 것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그들의 god-dam인 것이다. 위에서는 계속 물을 흘려보내고, 옆에서는 어디 터진 데 없냐고 묻고, 아래에서는 넘치지 않게 막으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댐에 금이 가면 그제야 모두가 놀란다.


그래서 국장님이 내가 나갈까 봐 안절부절했구나.
그래서 팀장님이 내가 나갈까 봐 엄지척 했던 거구나.
그래서 신규 대리는 친하게 지내자고 했던 거구나.
그래서 요즘 ‘그놈’이 나에게 일을 안 던지는구나.


결국 내가 Key-man이었다. 대단한 핵심 인재라는 뜻은 아니다. 없어지면 다 같이 곤란해지는 사람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조금 웃겼다. 나는 내가 안개 속에서 길을 못 찾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들 내가 거기 서서 막아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많이 받아내고 있었던 사람.


이 회사는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중간에서 dam처럼 막고 있어야 조용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그 god-dam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 관대하다.

이 god-dam한 구조를 알고도 아직 안 나가고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느낌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