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80-1

벚꽃의 꽃말

by NaeilRnC

벚꽃의 대표적인 꽃말은 정신적인 사랑, 아름다운 정신(영혼), 절세미인, 순결이라고 한다.

짧게 피었다 지는 벚꽃의 특성상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하며,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학부생들에게 벚꽃은 ‘중간고사’라는 꽃말을 가지기도 한다.


나에게 벚꽃은 유년기의 좋은 추억들과 20대의 재미있던 사건들이 연결되는 매개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산속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산의 주인은 통일교였다. 통일교 교주였던 문선명의 직계 가족이 살았던 산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벚꽃나무들이 수십 그루 자라고 있었고, 나는 여름이 되면 버찌를 따러 다녔다. 그런데 그때마다 ‘산집’이라 불리던 그 집 주인이 나와 어린 우리들을 협박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 순간에는 그저 도망치기 바빴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그 장면은 묘하게 밝은 색으로 남는다. 무서웠던 사람보다 버찌의 색이 먼저 떠오르고, 협박의 말보다 산속 공기와 나무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20대의 벚꽃도 만만치 않았다. 복학 후에는 신입생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버찌를 따서 술을 담가 먹인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주 상태가 메롱이 되어 강의실에서 쓰러졌고, 그 일로 교수님께 욕을 먹은 적도 있다. 최근에는 진해 군항제 때문에 여자친구와 다투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벚꽃은 내게 늘 낭만만 준 꽃은 아니었다. 예쁘게 피는 만큼 꼭 한 번씩 뭔가 사건을 끼고 들어왔다.


아무튼 나에게 이런저런 추억과 사건사고를 만들어준 꽃이다 보니 정이 들다가도, 바람에 날려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꽃이라는 게 우리의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주는 영향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꽃을 늘 보기 좋은 것으로만 생각한다. 예쁘고, 화사하고, 설레고, 낭만적인 것.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벚꽃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괜히 밖으로 나가고 싶게 만들고, 평소에는 잘 쳐다보지도 않던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보게 만든다. 같은 길도 벚꽃이 피면 다르게 보이고, 같은 사람도 그 아래 서 있으면 조금 더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꽃이 주는 영향은 꼭 아름다움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어떤 꽃은 계절을 알려주고, 어떤 꽃은 시험기간을 알려주고, 어떤 꽃은 잊고 있던 얼굴과 사건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꽃은 단순히 피었다 지는 식물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자의 시간을 붙들고 있는 표식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벚꽃은 연애의 시작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군항제의 인파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중간고사와 레포트, 혹은 돌아가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장치일 수도 있다.


나에게 벚꽃은 늘 그랬다.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무섭다. 너무 짧아서 그렇다. 순식간에 피고, 순식간에 절정이 오고, 바람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끔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기보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정이 들 만하면 떨어지고, 이제 좀 보겠다 싶으면 끝이 난다. 그래서 벚꽃은 봄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끝의 예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벚꽃이 내게 조금 불편한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런 벚꽃이 한때는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짧고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의 속성은, 누군가에 의해 죽음의 미학으로 포장되었다. 젊은 목숨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산화하는 것을 숭고한 것으로 꾸미는 데 벚꽃은 참 편리한 상징이었을 것이다. 꽃은 그저 피고 졌을 뿐인데, 사람은 거기에 충성과 희생과 죽음의 의미를 멋대로 덧씌웠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벚꽃을 보면 마냥 좋아한다. 욱일기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벚꽃에는 대체로 아무렇지 않다. 벚꽃에는 죄가 없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다. 꽃은 스스로 어떤 사상을 선택하지 않았고, 누구를 위해 피어난 것도 아니다. 벚꽃이 군국주의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제국을 찬양하고 싶어 했던 것도 아니다. 죄를 물어야 한다면 그건 꽃이 아니라 꽃에 의미를 덧씌운 인간 쪽일 것이다.


그런데 상징이라는 건 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떤 것은 끝까지 불편해하고, 어떤 것은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다는 사실 속에는 늘 선택이 들어간다. 우리는 모든 역사를 같은 온도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떤 상징은 날카롭게 경계하고, 어떤 상징은 아름답다는 이유로 쉽게 용서한다. 결국 벚꽃에 죄가 없다는 말은, 어쩌면 꽃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움 앞에서 기억을 조금 덜어내기로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벚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조금 복잡해진다.


분명 예쁘다. 내 유년기의 기억도 있고, 내 20대의 사건들도 붙어 있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 쉽게 아름답다고만 말해도 되는 걸까 싶은 마음도 남는다. 아름다움은 종종 기억을 덮는다. 화사한 꽃잎 아래에서는 사람도 역사도 잠시 말이 없어지기 쉽다. 그래서 벚꽃은 내게 더 복잡한 꽃이다. 추억의 꽃이면서, 허무의 꽃이고, 동시에 아름다움이 어떻게 불편한 기억 위에 무심히 내려앉는지를 보여주는 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시간도 비슷하다. 좋았던 시절은 늘 짧았고, 재미있던 사건들은 지나고 나서야 더 선명해졌다. 유년기의 산, 버찌를 따러 다니던 철없던 날들, 산집 주인의 협박, 복학 후 신입생들과 웃고 떠들던 20대, 술에 메롱이 되어 강의실에서 쓰러진 누군가, 그리고 군항제를 두고 다퉜던 최근의 일까지. 그때는 그저 사건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들이 전부 벚꽃이라는 하나의 이미지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벚꽃을 볼 때마다 꽃을 보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벚꽃의 꽃말이 꼭 정신적인 사랑이나 순결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꽃말은 사전에 적힌 뜻이 아니라, 자기 삶이 붙여놓은 뜻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나에게 벚꽃의 꽃말은 추억이고, 사건이고, 약간의 허무이며, 조금의 두려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나간 시간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그래서 올해도 벚꽃을 본다.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금방 지겠구나 싶어 괜히 서둘러 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 있는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자신의 시간들을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벚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내게 벚꽃은 아름다워서 기억나는 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시간을 데리고 오고, 너무 많은 기억을 덮고,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불편한 꽃이다.


그리고 주말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 내년을 또 기약해야 하는 꽃이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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