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81

역할이 권력이 되는 순간

by NaeilRnC

오늘은 Y 얘기를 해야겠다. Y는 경리다. 사실 나는 원래 경리라는 직무를 가볍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경리는 돈이 오가는 흐름을 관리하는 자리다. 1원만 틀려도 문제가 되고, 월급날이면 모든 직원이 몰려들고,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자리다. 겉으로 보면 단순 행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피곤한 실무 중 하나다. 실무 중심의 반복 업무고, 비용 대비 효율을 따져야 하며, 무엇보다 자금과 권한이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리는 원래 높은 직급이 아니다.


돈을 다루는 사람이 결정권까지 쥐게 되면 위험해진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경리는 낮은 직급에 두고, 위에서는 검토하고 통제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건 경리를 낮게 보는 게 아니라, 조직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조직은 그게 없다. 역할은 그대로인데 통제는 없고, 구조는 비어 있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경리가 권력이 된다. 이 조직에서는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실무자가 아니라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센스가 없으면 머리를 굴려봐요.”


이 말은 단순한 업무 지적이 아니다. 그건 자기가 기준이라는 착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원래 경리의 역할은 확인하고, 정리하고, 맞추는 것이다. 틀린 걸 고치고, 빠진 걸 채우고, 흐름을 맞추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서는 역할이 바뀌었다. 지적하고, 판단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구조다.

이 조직에서는 경리가 오래 남았고, 실무를 계속 쥐고 있고, 그 위에서 통제할 사람이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권력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착각이 시작된다.


“내가 오래 있었으니까 내가 맞다.”
“내가 다 아니까 내가 기준이다.”


그런데 그건 경력이 아니라 공백이다. 누군가는 빠져나갔고, 누군가는 버티지 못했고, 누군가는 떠났고, 남은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원래 경리는 장부를 가장 먼저 보기 때문에, 회사가 불안정하면 누구보다 먼저 런을 칠 수도 있는 자리다. 그런데 이 조직은 다르다. 영업을 하지 않아도, 제안서를 쓰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월급이 들어온다. 그러니 경리는 편하다.


갈려나가는 사람은 따로 있고, 자기는 그 모든 걸 지켜보며, 남이 해 오던 일을 마치 자기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조직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능력으로 올라온 권력이 아니라, 남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권력은 견제 없이 굳어진다.


나는 어제 그걸 정확히 봤다. 센스, 머리. 그 단어들은 업무 얘기가 아니었다. 사람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경리는 원래 돈을 관리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 조직에서는 사람까지 관리하려고 든다. 그래서 더 피곤하다.


돈은 맞추면 끝나지만, 사람은 맞춰도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Y가 아니다. Y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 구조다. 그래서 어제 하나 더 알게 됐다. 조직이 무너지면 직급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이 권력이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은 대개 가장 거칠게 사용된다. 구조가 없으면, 역할은 결국 사람을 누르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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