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겠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침 8시 30분부터 국장이 왜 일처리가 느리냐고 난리를 쳤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체념했다.
어차피 여기서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보다, 일단 맞고 시작하는 일이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옥외시설물 건은 파면 팔수록 불안해지는 일이다. 애초에 방향부터 잘못 잡힌 것 같았다. 팀장님은 토목과 전기는 따로 공사를 해야 하니 분리발주가 맞다고 하지만, 물품구매가 자꾸 걸렸다. 파고들수록 이건 분리발주를 하면 안 되는 용역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지피티조차 감사지적사항 100%를 공언했다. 이대로 가면 낭패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애초에 통합으로 묶어서 경쟁입찰을 했어야 하는데, 이 조직은 책임자에게 늘 면죄부가 있어서 그런가.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담당자인 내가 독박을 쓴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더 분명해졌다. 아, 나는 여기서 계속 버티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오전에 반차를 냈다. 겉으로 댄 사유는 공무원이 많은 국정대학원의 특성상, 내가 학교에 가서 물품구매 관련 내용을 아는 원우들에게 이것저것 배워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오늘 면접을 보러 간다.
오늘 면접은 급하게 잡혔다.
예전에 한 번 면접을 봤다가, 내게 프리랜서를 제안했던 업체 사장에게 안부차 전화를 걸었는데 사장은 오늘 바로 면접 일정을 잡아버렸다. 내가 오늘 반차를 내지 않았으면 오히려 일정이 꼬였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쿵짝이 잘 맞아떨어진다.
오늘 면접을 보는 회사에는 여자친구가 다니고 있다. 물론 내가 정말 그곳에 입사하게 된다면, 우리는 절대 티를 내면 안 된다. 그래도 그녀는 예전에 같은 직장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던 적이 있다. 낯선 곳에서 완전히 혼자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그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꽤 크게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순간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엄청난 사건 하나가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불안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된다.
아, 떠나야겠다.
오늘 아침이 딱 그랬다. 아직 면접 결과를 받은 것도 아니고,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적어도 나는 이 조직 안에서 계속 무너지는 쪽이 아니라,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는 쪽으로 한 발을 옮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