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냄새’와 편견
배경 : 한국인은 오랜 시간 ‘냄새’로 비하당했다.
“김치 냄새가 난다”, “마늘 냄새가 밴 민족”이라는 조롱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 나라는 사람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지하철이 놀라울 만큼 깨끗하다.”, “도시 전체가 정돈돼 있다.”
과거의 조롱은 사라졌고, 세계인은 지금 한국의 청결 문화에 감탄한다. ‘냄새가 난다’ 던 민족이 ‘냄새가 나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놓친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인은 한때 냄새 때문에 비하당했다. 그 경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특정 집단에 대한 ‘냄새의 편견’이 존재한다.
“인도인, 동남아 사람들은 냄새가 날 것 같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위생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말들은 사실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타 문화를 향한 상상, 혹은 무지의 산물에 가깝다. 우리가 겪었던 차별적 언어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향하고 있는 순간들이다.
한국인의 체취가 약한 이유는 유전자(ABCC11 변이), 기후, 청결 문화의 축적이라는 여러 층위가 결합한 결과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복잡한 과정을 잊고 체취를 ‘민족의 본성’처럼 단순화한다.
하지만 체취는 어디까지나 환경적 특성이다. 기후가 다르면 땀의 양이 달라지고, 문화가 다르면 세정 방식도 달라지고, 도시 인프라가 다르면 생활 냄새도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민족은 냄새가 난다”는 말은 언제나
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역사를 떠올렸을 때도 결코 옳지 않다.
그리고 이 사실을 나는 조금 더 개인적인 방식으로 알고 있다. 나는 겨드랑이 냄새 때문에 힘들어했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샤워 후 겨드랑이에 분을 발랐고, 여름이면 나도 베이비파우더를 바르고 다녔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겨드랑이 수술을 받았고 그 흉터가 아직도 남아 나는 한여름에도 반팔을 입지 않다.
냄새를 두려워하며 살아온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들은 냄새날 것 같다”라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쉽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잘 안다. 결국 ‘특정 국가·특정 민족은 냄새가 난다’는 말은 또 다른 차별을 낳고,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낼 뿐이다.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청결을 중시해 왔다. 삼국시대 고분벽화에는 냉천에서 몸을 씻는 장면이 남아 있고, 조선 시대에는 잿물로 옷과 피부를 닦았으며 중요한 일은 늘 목욕재계로 시작되었다. 깨끗함은 단순한 위생을 넘어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한국이 ‘냄새가 나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두고 가벼운 농담을 건네곤 한다.
“냄새나는 사람들은 조선 시대에 이미 호랑이가 다 잡아먹어서 지금은 냄새 적은 사람들만 남은 거다.”
물론 근거 없는 이야기지만, 냄새와 청결에 민감했던 한국인의 감각을 기발하게 표현한 ‘생태적 유머’다.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정결함을 중시하는 문화는 여전히 한국인의 일상에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문화가 20세기에는 ‘김치 냄새의 민족’으로 조롱받기도 했지만, 21세기에는 오히려 ‘가장 냄새나지 않는 나라’라는 찬사의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역전은 결국 다음의 사실을 말해준다.
1) 한때 비하의 도구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찬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청결 문화가 그렇다.
2) 체취는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환경의 문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냄새가 난다는 가정은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다.
3) 차별의 피해자였던 집단이 어느 순간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냄새를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그들과 다르지 않다.
4) 신체적 특징을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일은 항상 위험하다. 문화가 달라지면 인식도 완전히 뒤집히기 때문이다.
냄새로 비하당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우리는 여전히 다른 문화를 ‘냄새’로 상상하며 편견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호랑이가 사라진 산길처럼 편견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그 변화는 누군가를 비하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한국이 세계로부터 존중받는 시대라면, 우리 역시 타인을 존중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