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정규직과 프리랜서의 경계에 서서

by NaeilRnC
396e3d02-1905-419f-92ff-bcadf5b57cb0.png 프리랜서와 정규직의 사이


배경 : 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멀리서 보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되지 않는 흐릿한 황혼의 순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체성이 흔들리고, 존재가 섞여 보이는 시간.

돌이켜보면 나는 늘 그런 시간 속에서 일해왔다. 조직의 개도, 완전한 늑대도 아닌—그 중간 어딘가에서.

그리고 며칠 전 면접에서 나는 그 경계의 정체를 마주했다.


“정규직보다는… 프리랜서 형태가 더 좋지 않을까요?”

그 말은 사실 이렇게 번역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은 필요하지만, 당신을 고정비로 안고 갈 만큼의 용기는 없다.”

그 순간, 나는 다시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 있었다.


□ 개와 늑대, 충성과 자율의 은유

개와 늑대는 아종(亞種)의 관계다. 아종은 생물들이 발생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나타내거나 진화의 계통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는 분류 단계의 하나로 종(種)보다 아래, 변종(變種)보다 위에 있다.


개와 늑대는 유전적으로 99.96% 일치하는데 이는 백인과 흑인의 유전적 차이보다 더 가깝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늑대가 개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개는 늑대의 직접 후손은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다. 늑대는 체격이 더 크고, 육식성이며, 식습관과 행동 패턴도 다르다.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이 늑대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늑대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생존 본능과 관련이 있다. 도구가 미약하던 시절, 늑대는 인간의 가축을 공격하던 경쟁자이자 포식자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 유전처럼 남아 인간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 것이다. 개와 늑대의 또 다른 차이는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개는 길들여진 충성, 늑대는 길들여지지 않는 자율로 구분된다. 그리고 개는 조직이 원하는 인간형이다. 오래 앉아있고 회의를 사랑하며 지시가 떨어지면 질문 없이 움직이는 인간. 시간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조직의 리듬에 맞춰 호흡하는 존재인 반면 늑대는 조직이 경계하는 인간형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불필요한 의식을 거부하고, 업무성과를 결과로 증명하는 인간. 조직이 만든 속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리듬으로 움직이는 존재다.


나는 오랫동안 늑대의 리듬으로 살아왔다. 조직의 개가 되어 오래 앉아 있는 대신, 효율적으로 일했다. 나의 효율과 성과는 품질이었고 가짜노동인 회의 대신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 조직이 늑대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조직은 실력보다 순응을 선호한다. 조직은 통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자는 시스템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효율적인 사람은 불필요한 의식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자기 판단을 하는 사람은 시간은 곧 충성이라는 조직의 전통적 룰을 무력화한다.


그래서 조직은 이상하게도 늑대처럼 뛰어난 사람보다 개처럼 길들여진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또 이렇게 요구한다. “실력은 늑대처럼, 행동은 개처럼.”

이 모순의 요구는 인간을 마모시킨다. 그리고 한때의 나도 그 속에서 조금씩 닳아갔다.


□ 정규직 대신 프리랜서를 제안받았다.

며칠 전 면접에서 정규직 대신 프리랜서를 제안받았다. 조직이론과 노동경제학에 따르면 기업이 인력을 채용할 때는 항상 한계비용(Marginal Cost)과 한계수익(Marginal Revenue Product)을 비교한다.


인력 채용에 있어 한계 비용(Marginal Cost of Labor)은 근로자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 비용으로 이는 주로 임금(wage rate)과 관련 세금 및 부대 비용을 포함한다. 한계 수익(Marginal Revenue Product of Labor)은 근로자 한 명을 추가로 고용함으로써 생산되는 추가 생산량(한계 생산물)이 창출하는 추가 수익으로 이는 해당 근로자가 기업의 전체 수익 증대에 기여하는 가치를 말한다.


결국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므로 다음의 원칙에 따라 고용 수준을 결정한다.

한계비용보다 수익이 클 경우 기업은 이윤을 늘리기 위해 고용을 늘리고("한계 수익 > 한계 비용"),

추가 고용 근로자의 비용이 수익보다 크다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며(한계 수익 < 한계 비용),

한계 수익과 한계 비용이 일치하는 지점(한계 수익 = 한계 비용)까지 근로자를 고용한다.


정규직을 뽑는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비용, 조직 내 관리·감독비용, 법적 책임 리스크, 장기적 인건비 부담 등 다양한 비용을 장기적으로 떠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정규직은 기업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장기부채라 할 수 있다.


반면, 프리랜서는 필요할 때만 계약이 가능하고, 조직 내부 갈등과 보상, 승진관리가 필요 없으며, 프로젝트 예산만 있으면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 없으면 비용이 들지 않는 Risk-Free 한 인력조달방식이다. 따라서 면접에서 프리랜서를 제안받았다는 것은 "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나를 "고정비"로 안고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 개와 늑대의 시간,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정규직은 조직의 시간 위에서 살게 한다.

출근시간, 회의 시간, 결재와 보고, 타인의 리듬에 맞춘 하루

반면, 프리랜서는 자기 시간 위에서 산다.

집중하고 싶을 때 집중하고, 일하고 싶은 방식으로 일하고, 성과로 평가받고, 자신의 리듬을 중심에 둔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조직의 시간보다 내 시간에 충성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에게는 프리랜서가 정확히 맞다.

책임도 위험도 나의 몫이고 수입의 변동과 나의 미래에 대한 구조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


나에게는 프리랜서가 자연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 속에서 '늑대의 방식'으로 일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직 안에서 나는 늘 충성과 자율의 경계에 있었다.

개처럼 일하면서 늑대처럼 생각했고, 개처럼 요청을 들어주면서도 늑대처럼 독립적이길 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늑대가 왜 개 밑에서 일하냐"라고 했다.

보통 14일 이상이 걸리던 제안서를 5일 만에 끝냈고,

형편없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5:1의 경쟁률을 뚫고 정성평가 1위를 했지만

실적 부족으로 결국 4위로 떨어졌을 때 회사에서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헛돈을 썼다"며 비난해 댔다.

퇴사 후 누군가 보여준 회사후기에서 나는 "개처럼 일하고도 결국 버림받았다"라고 평가되었다.


난 사실 개도 아니고 늑대도 아니다. 그저 내 시간에 충성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들어온 프리랜서 제안이었기에 이 제안에 마음이 가긴 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 현실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