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왕국이 멸망할 뻔했는데, 타이밍을 놓침
왕국은 멸망 직전이었다. 이번에는 진짜였다. 왜냐하면 왕이 직접 “멸망 직전”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왕이 말하면 공식이다. 그게 정치였다.
“이대로 가면 3일 안에 왕국이 붕괴합니다!”
신하들이 웅성거렸다.
“전하, 3일이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냥… 느낌이다.”
“역시 전하의 촉은 날카롭습니다.”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견을 제시하면 회의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결론이 났다.
“용사 노곤을 깨워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깨우러 가지 않았다. 이제는 왕도 알고 있었다.
“깨우러 가라” 했다가,
“그래도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돌아오고,
“음… 가만히 있자”로 끝나는 패턴을.
그래서 대신들끼리 새로운 결론을 냈다.
“그럼 일단 멸망을 기다려보죠.”
“네, 멸망 추이를 좀 보고요.”
“중간중간 축제도 하고요.”
시간이 흘렀다.
첫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축제
둘째 날, 약간 흐린 날씨였다. 그리고 축제
셋째 날, 비가 조금 내렸다. 그리고 축제
넷째 날이 되자 왕이 말했다.
“… 멸망이 늦어지고 있군.”
“축제다!”
신하는 조용히 말했다.
“전하, 혹시 계산을 잘못하신 건…”
“조용히 하라. 멸망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때, 노곤이 뒤척였다. 잠결에 이불을 들어 올렸다가, 말려있던 이불 끝이 방 천장을 건드렸다.
그 충격으로 천장이 살짝 떨렸고, 그 떨림이 지붕으로 전달되고,
지붕의 기운이 하늘로 튀어 올라 왕국 전체 하늘이 잠깐 흔들렸다.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대기 중이던 무언가가 있었다. 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모여 있던 불길한 운과
나쁜 기운과 어설픈 예언과 엉성한 재난 플래그들이 한꺼번에 균형을 잃었다.
“어?”
“어어어?”
“야야야, 지금 아니야—”
모든 멸망 요소들이 타이밍을 잃고 우르르 흩어졌다. 한 번 흩어져 버리면 다시 모이기 힘들었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에도 귀찮았고, 마침점 찍기에도 애매했다. 결국 그날 왕국은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하기로 한 날에 멸망이 늦어지는 바람에 멸망 일정이 취소된 것이었다.
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역시 용사님이 시간을 흔드셨군.”
그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물론 아무 근거도 없었다.
사실 그냥 ‘내가 계산을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장 버렸다. 버리니 편안했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했다.
“용사님이 멸망을 미뤄주셨어!”
“천하제일 미루기의 신이다!”
“축제다!”
10번째 축제가 열렸다. 축제 명분은 이제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