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사십춘기, 공생의 시작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by 붙박이별

# 사십춘기, 요즘 나이 계산법

12월

일 년 중 마지막 달
입시의 달(고입, 대입)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해를 계획하는 달
크리스마스와 송년회 약속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달


12월은 건강검진의 마지막 달이기도 하다. 매번 12월이 되면 등 떠밀리듯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아들에게 '해야 할 일을 왜 미리 안 하느냐'라고 잔소리하던 내 모습이 무색한 순간이다.

검사를 마치고 마지막 관문, 의사 선생님 진료시간이 되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가요?"


"운전할 때 눈이 흐리게 보여서 불편할 때가 있어요."


"노안이 오는 건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노화, 멀게만 느껴지던 그 단어가 갑자기 품으로 훅 들어온 순간이었다. 거울 속에 다크서클을 진하게 드리운 중년의 여자가 쳐다보고 있다. 매일 보던 얼굴인데 갑자기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해서 루테인 한 박스를 주문했다. 동네 병원을 검색해서 보톡스 예약을 했다. 또... 무엇을 해야 할까?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흔에 등단한 소설가 박완서 씨는 나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요즘 사람 나이는 옛날 사람과 똑같이 쳐서는 안 되고,
살아온 햇수에 0.7을 곱하는 게 제 나이다.

- 소설가 박완서 -


요즘 사람이 겉모습이나 마음가짐이 옛날 사람에 비해 젊어진 것은 사실이다. 3월 학부모 총회에 오시는 중학교 학부모님들의 상당수가 30대 중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액면가가 낮다고 해서 신체 기능까지 젊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체적 기능은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인스턴트를 즐겨 먹는 식습관이나 스마트폰의 사용 등으로 신체적 기능은 요즘 사람들이 더 떨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예전에는 중년의 전유물이었던 당뇨, 고혈압이 30~40대에서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서는 3040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빨리 늙는 '가속노화'의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사십춘기, 사춘기를 만나다

요즘 사람들은 두 개의 나이를 갖고 산다. 요즘나이와 신체나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가 힘드니 엇박자가 난다.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니 쉽게 짜증이 나고 자신의 신체적 노화를 지켜보며 인생무상을 느끼는 제2의 사춘기, 사십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스물 네 살에 시작한 교직생활이 20년이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진로, 적성, 흥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고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했다. 사범대를 진학했고 큰 저항 없이 교사가 되었다. 결혼, 출산, 육아... 마치 산업혁명 시대,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물건처럼 인생의 단계가 지나갔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줄기차게 외쳤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가르쳐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의 사십춘기가 시작되었다.

몸은 어른으로 변해가는데 마음은 아직 어린이에 머물러 있는 시기. 어른과 아이의 간극을 메우기가 힘든 시기, 사춘기는 사십춘기와 닮아있다. 인생의 변곡점인 두 지점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맞닿아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KakaoTalk_20231224_225214699_01.jpg


#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대학교 4학년, 진로에 대한 걱정이 부피를 키워가던 무렵이었다.


"사주 잘 보는 아저씨가 있다는데 너도 갈래?"


친구의 제안에 앞뒤 잴 것 없이 대학로로 향했다.

나름 성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사주를 본다.'는 사실에 거리낌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개 상상 속의 점집은 여기저기 부적이 붙어있고 사천왕상이 험상궂게 째려보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학원 상담실 같은 모던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사무실이었다. 사주를 보시던 아저씨께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씀하셨다.


"음... 중생을 거느릴 사주야! 그리고 주변에 남자가 많네요."


대학생에게는 한 푼 한 푼이 아쉽다. 거금 3만 원을 내고 나오는 길에 사기꾼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 울컥 화가 났다. 당시 남자친구가 없었고 중생을 거느릴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때 그 아저씨는 틀렸다.

그 해 2월, 한 사립 남자 중학교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20년째 남자 중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중(학)생 남자아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심지어 집에는 아들만 두 명이 있다. 지금 그 아저씨는 맞다. 맞는 것을 넘어서서 '족집게'임에 틀림없다.




# 사춘기와 사십춘기, 공생의 시작


예전 유머 중에 "북한의 김정은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중2가 무서워서"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 무서운 중2와 함께 20년을 살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담력이 생겼다. 하지만 툭툭 내뱉는 가시 같은 말에 대해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TV에서는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 서적이 쏟아져 나온다. 20여 년간 타인의 사춘기를 지켜봐 왔기 때문에 그 시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친구와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학업 스트레스. 그 어느 하나 대충 넘기기 어려운 인생의 과업이다. 그런데 나도 인생은 처음이라 엄마, 선생님, 아내, 딸. 그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사춘기 아들아,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우리 함께 잘 살아보자."

KakaoTalk_20231224_225109281_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