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무기

사춘기와 사십춘기의 공생법칙 1

by 붙박이별

# 사춘기와 사십춘기의 줄다리기


매서운 추위가 며칠째 맹위를 떨치고 있다. 동료교사가 말을 꺼냈다.


"아들이 패딩을 사달라고 하는데 안 사줬더니 삐쳐서 말을 안 해. 이렇게 추운 날씨에 얇은 교복 한 장 입고 학교를 가더라니까. 사달라고 시위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이라면 사줄 거예요?"


자세히 들어보니 작년에 유행하는 패딩을 사줬는데 올해는 유행이 바뀌었단다. 노스페이스 눕시. 올해의 중학생들 유행 패딩이다.

우리 집 중딩이는 패션에 문외한인 데다가 관심도 없어서 2년째 같은 패딩을 입고 있지만 그 집 중딩이는 패션의 아이콘이다. 입장이 다르니 섣부르게 조언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를 가진 선생님은 "일관성이 중요하니 절대 사주지 마라."라고 조언을 했다. 맞는 말이다. 자녀 양육의 제1원칙은 일관성이니까.

우리 중딩이들에게도 엄마의 말이 곧 법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이가 이렇게 착하기만 해서 친구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우리 아이가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돌변한다. 지나치게 원칙을 강요하다 보면 관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번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안타깝게도 회복이 불가능해진 경우도 많이 봤다.

사춘기 아이와 사십춘기 부모가 서로 잡아당기기만 한다면 줄은 끊어져 버린다. 관계의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느슨하게 풀어줬다 하는 일은 사춘기 아이는 할 수 없다. 몸만 성인일 뿐 그들의 관계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쪽은 아직 사십춘기 부모다. 드디어 부모가 나잇값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알면서도 눈치껏 한발 물러나주는 순간, 어쩌면 저만큼 멀어졌던 사춘기 아이와 다시 가까워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더라도 사춘기를 먼저 지나온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 사춘기라는 무기


중학교 때의 일이다. 엄마가 하얀 운동화에 남색 줄무늬가 있는 운동화를 사 주셨다. 어린눈에 보아도 교복과 제법 잘 어울렸다.


" 운동화 샀니? 너무 잘 어울린다."


지나가시던 도덕 선생님의 말씀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반 일진과 마주치긴 전까지는...

"너 이 짝퉁 어디서 샀냐? 쪽팔리게 짝퉁을 신냐?"


그 아이에겐 의미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가슴속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다음날, 다시 헌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며칠 후, 학교에서 걸스카우트 캠핑이 있던 날이었다. 걸스카우트 신입으로 처음 맞이하는 행사였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까지 함께 하는 제법 규모 있는 행사였다. 갑자기 헌 운동화가 창피해졌다.

저녁 자유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나이키 운동화 사와. 안 사 오면 나 그냥 집에 갈래."


그날 밤, 어디서 구해왔는지 엄마는 보라색 나이키 운동화를 담장 너머로 넣어주셨다. 내 생애 첫 나이키 운동화였다. 운동화를 신자 키가 한 뼘쯤은 자란 듯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에게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그래, 잠시 잊었다. 중학생은 원래 그런 거였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챙취할 수 있는 사춘기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그 무기에 가끔은 져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동료교사에게 곧장 대답했다.


"그냥 사줘요. 이번 기말고사 시험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가 감동받았다고 해."


내일 아이는 따뜻한 등굣길을 맞이할 테고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도 달아 따뜻해질 것이다.




공생 : 서로 도우며 함께 삶


# 삶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하는데 10여 년 전 가르쳤던 학생이 주문을 받고 있었다. 무던히도 속을 썩였던 아이였다.


" 어머 반갑다. 너 여기 사장님이니?"


" 네. 제가 운영해요. 선생님은 그때와 똑같으신데요."


" 넌 너무 멋져졌다. 10년 만인가? 반가워. 잘 지내는 모습 보니 기분 좋다."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는,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그 아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아이가 싱긋 웃더니 딸기케이크를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선생님, 이거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딸기 케이크 위로 10여 년 전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갈까 그 아이를 채근하던 때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너에게 했던 그 무수한 말들이 네 인생에 도움이 되었니?' 차마 묻지 못하고 카페를 나왔다. 채근하는 말보다 따뜻한 말을 건넸던 편이 그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삶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정답이 없다. 먼저 살았다고 해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너는 틀리고 내가 맞다.'라는 생각으로 채근하는 일은 그만두자.

공생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를 한 뼘만큼 이해하고 한 뼘만큼 가까워지려는 마음이다.

사춘기가 꽤나 큰 무기인양 휘둘러대는 아이에게 져 준다고 해서 그의 삶이 망가지거나 막돼먹은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우리는 사춘기를 지나온 유경험 자니까, 그것으로 져 주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사십춘기인 나에게 누군가의 충고보다 따뜻한 위로가 눈물 나게 그리운 것처럼 사춘기 아이도 그러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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