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깜빡 병'이라는 난치병에 대하여

사춘기와 사십춘기의 공생법칙 2

by 붙박이별


# 눈 오는 날, 우리 학교는 비상사태


남자중학교에 비상이 걸리는 날이 있다. 비와 눈이 오는 날이다. 특히, 눈.

언제부턴가 나에게 눈은 두려움이었다. 눈이 오는 날 왕복 80km의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번은 출근길에 차가 교차로에서 눈에 미끄러져 회전하는 바람에 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걱정 많은 날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신나는 날이다.

창 밖으로 눈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다급히 교내 방송을 한다.


"지금 밖에 눈이 오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운동장 출입을 자제하기 바랍니다."


방송이 무색하게 이미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나왔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가 보였다.


"00아~ 일어나라. 엄마 빨래하기 힘드시다."


한쪽에선 맨손으로 눈을 뭉치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빨간 손이 보기만 해도 시리다.


"안 춥니? 감기 걸려. 빨리 들어가."


아무리 단속을 해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을 마흔을 훌쩍 넘긴 내가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래, 놀아라. 놀아.

아이들이 실컷 놀고 떠난 자리. 교복, 운동화, 물병, 패딩점퍼들이 제 주인을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값비싸거나 운 좋으면 주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학생부 한편에 놓인 분실물 보관함 행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깜빡 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려있다.


수업이 시작되자 운동장에 덩그러니 남은 눈사람




# 일요일 저녁의 성스러운(?) 의식


한 달에 한 번, 일요일 저녁이면 의식처럼 치르는 행사가 있다. 아들들의 가방 검사. 중학생이 되었으면 가방정리는 스스로 하는 것 아니냐며 흉볼 것을 알면서도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들, 학교 갈 준비 했니?"


"네, 가방정리도 했고 실내화랑 준비물도 챙겼어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아들이 비에 홀딱 젖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맞벌이라서 아침에 우산을 챙겨 줄 수 없었다는 마음에 아들에게 미안했다.


"우산 왜 안 가져갔어? 아침에 비 올 것 같았는데..."


"찾아봤는데 우산이 없었어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여기저기 우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뚱뚱해 보이던 가방은 무게도 제법 나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뒤집어 내용물을 꺼내자 3단 우산 3개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우산 가져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착실히 지켰다. 다만 엄마가 우산을 꺼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 그것도 착실히 지켰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후 일요일 저녁이면 한 달에 한번 성스러운(?) 가방 검사가 시작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여줬지만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춘기 아들은 '깜빡 병'에 걸렸다.




# 너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5~6년 전만 해도 종이 가정통신문이 일반적이었다. 1학년 담임을 하던 때였다.


"선생님,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시 전달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학부모님의 전화였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학급 아이들 가방을 들여다보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들의 가방에서는 가정통신문과 각종 학습지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한 아이의 가방 속에서 나온 가정통신문 눈덩이들은 충격이었다. 가방 속에서 동그랗게 말린 눈덩이 같은 가정통신문과 학습지가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선생님이 부모님께 전달하라고 준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장난칠 수가 있냐'며 아이를 따끔하게 혼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가정통신문을 받지 못한 학부모님들은 계속 계셨으니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그 당시 말 잘 듣는 유치원생 아이를 둔 엄마로서 중학교 1학년씩이나 된 다 큰아이가 가정통신문 하나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큰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들, 가정통신문 내야 할 것 없니?"


"네, 없어요."


학기 초에 제출할 서류가 많을 텐데 없다는 아들의 대답이 미덥지 못했다. 가방을 열었을 때 6년 전 우리 반 아이의 가방에서 느꼈던 그 충격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가방에는 동그랗게 말린 가정통신문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가정통신문을 엄마한테 주는 것을 잊을 수는 있어. 그런데 이렇게 동그랗게 말아 넣어두는 것은 잊은 게 아니라 일부러 그런 거잖아. 왜 그런 거니?"


아이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게.... 그렇게 말아서 넣으면 더 많이 들어가서 그랬어요."


당황스러운 답이었다. 6년 전 호되게 혼냈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일부러 그런 것도, 선생님을 무시해서 장난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정통신문은 선생님이 준 종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아이의 잘못이라면 가방에 넣는 순간 부모님께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 정도. 그냥 사춘기에 걸리는 흔한 '깜빡 병'이었을 뿐이었다.


"다음부터는 파일에 잘 껴서 갖다 줘. 잊지 말고."


아들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물론, 큰아들의 깜빡 병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지만 내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도 다 그렇다는 사실은 퍽 위안이 되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사춘기 자녀가 깜빡 병에 걸렸다면 너무 속상해 하지는 마시길. 병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 치유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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