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그들의 여왕벌을 꿈꾸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루어 낼 기적

by 붙박이별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中




# 여왕벌을 꿈꾸며...


학교에서 있다 보면 제일 부러운 사람이 있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아닌데 인기 만점인 교사. 우리 학교 A선생님,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보면 선생님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왜냐하면 운동장에 흩어져서 놀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그 선생님 곁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흡사 여왕벌 주변으로 모여드는 일벌 떼 같아서 '여왕벌'선생님이라고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남자 중학교에서 인기 있는 선생님이니 예쁘고 젊은 여선생님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A선생님은 마동석 사촌쯤 되어 보이는 큰 덩치의 소유자이며 40대의 남자 선생님이다.

외모가 아니라면 이 선생님의 인기 비결을 도대체 뭘까? 성격? A선생님은 40대 상남자 특유의 딱딱한 말투를 소유하고 있다. 친절한 말투와는 거리가 멀다. 목소리도 커서 아이들을 지도하실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인기 비결이 외모도 성격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선생님, 츤데레잖아요. 앞에서는 저러셔도 뒤에서 막 챙겨주시고."


여기서 놀란 포인트는 A선생님의 겉보기와 다른 속 깊은 면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의 사람을 보는 눈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깊이 볼 줄 아는 생명체였다. '여왕벌'의 비결은 사춘기 아이들과 마음으로 닿는 일이었음을 알았다.



# 착각은 자유, 사십춘기의 치트키


사춘기 아이들은 상대의 생각을 고려해서 말을 하는 것에 서툴다. 그러니 상대를 배려하는 말에 능숙한 어른인 선생님은 그들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눈물로 화해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실제 학교 생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있었던 일이다. 미혼의 40대 여선생님이 계셨는데 소녀처럼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중3 사춘기 남학생들의 거친 언어는 선생님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나는 교직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자책을 하시기에 위로해 드렸다. 그것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얼마뒤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학교를 옮기셨다.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로부터 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잔소리가 많으시긴 하지만 실력이 뛰어나시고 우리 한 명 한 명을 잘 이해해 주셨어요."

몇 달간 마음고생을 하셨던 선생님이 안쓰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진작 서로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춘기 남자아이들은 표현에 인색하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다 그들의 마음이라고 미루어 짐작해서는 안된다. 외강내유. 단단한 겉모습 안에 따뜻함이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록 착각일지라도... 아이들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저건 진심이 아닐 거야. 분명 속으로는 미안해하고 있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20년 세월을 버틸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착각은 사십춘기를 견뎌내는 나의 치트키다.





#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중 3 학생과 진로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의 일이다.


"저는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요."


"음... OO 이는 운동도 좋아하고 성격도 차분해서 잘 어울릴 것 같다. 근데, OO이가 생각하기에 교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뭐라고 생각해?"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대답했다.


"잘 가르치는 거요."


그렇다. 교사는 잘 가르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일타강사나 AI가 더 훌륭히 해 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기본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 반 30명을 하나의 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 어제와 표정이 달라지진 않았는지, 오늘 밥은 왜 안 먹는지, 잘 놀던 친구와는 왜 안 놀고 혼자 앉아있는지 살피는 것. 그 민감함이 필요하다.

찬찬히 살펴보면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이 있다.




#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루어 낼 기적을 꿈꾸며


작년에 학교를 떠나시는 선생님께서 화분을 하나 주셨다. 독도에서 자생하는 '섬기린초'라는 화초였다. 아침마다 물을 주고 밖에 내어놓지도 않고 애지중지했다. 여름 방학에는 집에 데려가서 방 안에서 키웠다. 정성을 쏟아도 길거리에 있는 잡초 정도로 밖에 자라지 않아서 영양제도 듬뿍 주었다. 름방학이 끝나고 출근을 하는데 운동장 화단에 버려진 화분이 보였다. 누군가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그냥 밖에 버리듯 내놓고 간 것이었다. 잎이 무성하고 줄기가 굵어서 '섬기린 초'라는 것을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알아차렸다. 손에 소중히 들려있는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은 나의 '섬기린 초'와는 대조적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섬기린초는 야생초였다. 햇빛, 비, 바람을 맞으며 자라야 본연의 멋진 자태를 자랑할 수 있다. 그런 화초를 실내에서만 키웠으니... 손에 들고 있던 화분을 화단에 내려놓았다. 걱정이 되어 내 것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놓긴 했지만.

지금 나의 '섬기린 초'는 기특하게도 약간 튼튼해졌다.


사춘기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화분을 기르는 일과 같다. 꽃을 길러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집에 있는 화분들을 매일 똑같이 물을 주면 어떤 화초는 잘 자라지만 어떤 화초는 나의 '섬기린 초'처럼 썩어서 죽고 만다.

아이를 길러내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각자의 고유성을 살피고 돌봐줄 때 비로소 신만의 꽃을 멋지게 피워낼 수 있다. 물론, 아이가 잘 자라는데 8할은 가정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8할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싶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부모의 불화, 가정폭력, 경제적인 어려움. 화초가 그 안에서 바싹 말라버지지 않도록 2할이라도 해 내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은 일타강사도 AI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이다. 나는 오늘도 기적을 꿈꾼다.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안치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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