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사달라고 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 저가형 폰을 구매했으니 수명이 다 되긴 했다. 흔쾌히 최신형 핸드폰을 선물했다. 아들은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기다렸다. 덩달아 우리도 들떴다. 드디어 핸드폰이 도착했다.
구형폰에서 신형폰으로 데이터를 옮기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아들이 슬며시 등을 돌렸다. 아마도 제 비밀번호가 엄마에게 노출될까 무심코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아들에게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숨기고 싶은 것이 늘어나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저마다 비밀의 방을 가지고 있다. 그 방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어떤 부모는 강제로 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 문은 강제로 당길수록 더 굳게 닫힌다.그런데 그 방 문, 의외로 쉽게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관계의 시작, 그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는 것
2월 말이 되면 담임교사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명단이 가장 궁금하다. 이 명단이 앞으로의 1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3학년 담임이 예정되어 있던 그 해, 2학년에서 소위 논다고 소문난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우리 반이 되었다.
"애들은 방학 지나면 또 달라져.", "3학년 되면 사춘기 끝나서 달라질 거야."
동료 교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말을 보탰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세요?'라고 볼멘 마음의 소리가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남의 집 아이가 사고를 치면 '사춘기는 원래 그래, 사고 친 애들이 나중에 더 효도한다.'라고 웃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곤 한다. 하지만 그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그 집 엄마의 입장은 다르다. 웃을 수가 없다.
내가 그랬다. 이건 내 집안일이니까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 년 동안 난 우리 반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 우리 반 아이들의 옆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았다. 대화에 무턱대고 끼면 아이들은 비둘기처럼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사춘기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연애의 기술'과 비슷하다. 너무 대놓고 친해지려 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달아나게 할 뿐이다.
나름 자연스럽게 다가갔지만 아이들은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후 아이들과 천금 같은 대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마도 담임이 말 한번 붙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화에서 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온통 게임용어로 가득한 그들의 대화는 한국말이지만 외계어에 가까웠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사춘기 아이들에게 난 투명인간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게임을 공부했다. 게임의 'ㄱ'자도 몰랐지만 공부야 자신 있었으니까. 온라인 게임대회에 참가했던 남편이 참가선물로 받은 '리그 오브 레전드' 마우스패드를 학교에 가져갔다.
인생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마우스패드로 난 학교 인기선생님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마우스패드를 구경하러 온 아이들이 내 앞에 줄을 섰다.
"선생님, 롤 하세요?"
"응. 잘 못해. 그냥 대회 참가선물이야."(진실)
"선생님, 뭐예요?"
"나 브론즈"(거짓)
진실과 거짓이 적절히 섞인 하얀 거짓말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의 비밀의 방을 열 수 있었다.
상대를 이해(사랑)한다는 것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상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잘 살피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 우리 관계의 거리, 1미터
'사춘기가 되기 전에 아들 방 손잡이를 없애야 한다.', '아들이 방문을 하도 잠가서 아예 방문을 떼어 버렸다.' 등등 사춘기 아들 괴담이 있다. 오죽하면 부모가 저런 말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명백한 정서 학대다. 사춘기 아이는 어른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과업이 있다. 문을 잠그고 부모에게 자꾸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 아닐까?
"저 때문에 엄마가 여기저기 불려 다니셔서 불쌍하고 미안해요."
몇 년 전 강제전학을 판결 받은 학생이 엄마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물론, 아이가 개과천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이는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사춘기 아이는 겉모습은 아직 어리지만 마음속은 하루가 다르게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미성숙한 인격체지만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그러니 우리는 그 아이들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봐 주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건강한 마음의 거리는 1미터라고 한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거리, 딱 그만큼 사춘기 아이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힘들 때 함께 손잡고 걸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는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하는 일이다.
아들, 힘들면 엄마랑 손잡고 걸을래?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간간이 부는 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면 평상시 멀게만 느껴지던 길도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