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을 알려드립니다.

기분에 이름표를 붙이는 기분 예보관

by 붙박이별
오늘의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오늘 늦은 오후부터 밤 사이 경남서부내륙에 눈이 조금 오는 곳이 있겠으며, 빙판길과 도로 살얼음이 나타나는 곳이 있겠으니, 교통안전과 보행자 안전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 일기예보를 대하는 자세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는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날씨 예보부터 확인한다. 편도 40km 출근길을 달려가야 하니 눈과 비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제우스 신도 아니니 오는 눈과 비를 막을 방법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마음의 준비다. 눈이 오는 날은 무릎 담요와 따뜻한 카페라떼를 텀블러에 챙겨나간다. 달콤한 간식과 '눈 오는 날 어울리는 노래' 플레이 리스트를 틀면 출근 준비 완료다. 비가 오는 날은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빵을 챙겨나간다. '비 오는 날 카페 재즈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틀면 출근 준비 완료다. 날씨 예보 덕분에 아침 출근길의 눈과 비는 그럭저럭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날씨는 카오스, 기상 예보관의 중요성

날씨는 소위 카오스라고 불리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물리 현상이다. 카오스이기 때문에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일기 예보는 기상 예보관이 수치 예보 자료를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이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는 방대한 자료와 수치 계산을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해 내는 하드웨어 일 뿐 그것이 곧 예보의 정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날씨 예보는 예보관의 분석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현상으로 인해 예보관의 역할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 사춘기의 기분은 카오스, 기분 예보관의 필요성

우리의 기분도 날씨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을 갖고 있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 있다. 바로 아이가 잠든 순간이다. 귀여운 아기 시절부터 덩치가 엄마보다 훨씬 커진 지금까지도 자는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다.

그런 천사가 눈을 뜨면 돌변한다. 어느 포인트에 화가 났는지 불쑥 짜증을 내기도 하고 갑자기 우울해져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사춘기의 기분은 카오스의 영역, 예측 불가다. 그런 때일수록 기분 예보관의 역할은 중요하다.



# '기분에 이름표 붙이기'는 기분 예보관의 역할

자신의 기분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기분 예보관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자신의 기분에 이름표 붙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슬픔, 분노, 화남, 억울함, 우울함 등을 모두 '짜증'으로 퉁 친다. 얼마 전, 학교에서 민수(가명)가 친구와 복도에서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민수를 따로 불러 휴게실로 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먼저 말해볼래?"

"아, 짜증 나. 쟤가 먼저 기분 나쁘게 했어요."

"어떻게 했는데?"

"지나가는데 밀쳤어요."

"아, 그랬구나. 아팠겠구나. 기분도 나쁘고. 그런데 00이가 일부러 그런 거였니?"

"아니, 그건 아닌데요. 복도에 지나가는데 갑자기 치고 가니까 짜증이 났어요."

"00이가 치고 가서 갑자기 짜증이 난 거니?"

"아니, 오늘 아침부터 좀 그랬던 거 같아요."

"이런, 오늘 아침부터 짜증 나는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왜 짜증이 났을까? 선생님한테 말해줄 수 있니?"


결국 민수는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엄마께 꾸중을 듣고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학교에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민수는 '짜증'에 '속상함'이란 이름표를 붙였다.


"저런, 늦게 일어나서 민수도 지각할까 봐 걱정되었을 텐데 꾸중도 듣고 밥도 못 먹었으니 속상했겠네. 이거 먹고 속상한 거 풀어. 00이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용서해 줄 수 있겠어?"

"네, 저도 00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아는데 아침에 속상했던 거 00이한테 화풀이한 거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민수는 미안함이라는 예보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민수는 기분 예보관이 되었다.




# 오늘의 기분을 알려드립니다


수업을 들어가면 나의 기분에 이름표를 붙이고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려서 너무 설렌다.', '내일 수업 발표가 있어서 떨린다.', '어제 아들이 게임을 몰래한 것을 알아서 속상하다.' 등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선생님의 기분을 인정하고 오늘 어떻게 선생님을 대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한다. 속상한 사람을 울리고 싶거나 억울한 사람을 더 억울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뾰족하게 말하거나, 엎드려 자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의 기분을 물어봐준다. 자신의 기분에 이름표 붙이는 것은 그 아이의 역할이다. 우리는 단지 기분 예보를 듣고 오늘 내가 어떻게 그 아이를 대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뿐이다. 물론, 매번 성공적이지는 않다. 사춘기 기분은 카오스 현상, 원래 예측 불가능한 것이니까.

'어제 아빠에게 혼난 아이'의 억울함은 공감해 주고 달콤한 사탕을 건넨다. 새로 스마트폰을 바꾼 아이는 모두가 마음껏 부러워해준다.

'기분 예보관'이 되는 순간 아이들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분노로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차분해지고 억울함으로 가득 고여있던 눈물이 쏙 들어가기도 한다. 친구의 슬픔은 함께 슬퍼해주고 친구의 기쁨은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 씀씀이가 생긴다. 그중 제일은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타인을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사춘기 아이의 기분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기분을 예보해 주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기분 예보를 들은 아이는 분명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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