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로 살아간다는 것

타이틀 부자, 허구의 독립에서 벗어나기

by 붙박이별

# 마흔 살의 소녀

리본 달린 머리띠, 반짝이는 머리핀, 프릴 달린 원피스... 내가 사랑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언니, 언니는 색이 화려한 옷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런 색보다는 검은색이 코디하기 좋지 않아?"


그렇다. 나는 4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귀여운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심지어 노트북, 다이어리, 핸드폰 케이스, 탁상달력, 텀블러 등의 소품들은 '빨강머리 앤'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정해진 길로만 살아왔던 나의 소소한 반항 같은 것이다.



# K-장녀, 말 잘 듣는 착한 큰딸

국민학교 시절, 엄마가 우리 옷이나 신발을 사 줄 때 기준은 무조건 실용성이었다. 세탁기를 마구 돌려도 변형이 없는 티셔츠, 털이 잔뜩 들어 빵빵하기까지 한 원더키디 부츠, 더러움 타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두운 색 바지 등.

물론,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나도 선택의 기준은 실용성이므로 엄마의 선택은 타당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엄마가 선택해 준 것을 군말 없이 입고 신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유난 맞은 구석이 있었다.

엄마가 골라준 것은 절대 입지 않았다. 공주님이 입을 법한 레이스 달린 원피스, 털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하얀 부츠에 빨간 왕리본이 달린 굽 높은 부츠를 고르고 사주지 않으면 떼를 썼다. 결국, 엄마는 동생이 원하는 것을 사주시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 큰딸은 착해. 엄마말도 잘 듣고. 이게 훨씬 좋은 거야. 쟤(동생)가 몰라서 그래."


엄마의 칭찬은 달콤했고 엄마말은 틀리지 않았다. 티셔츠는 빨아서 탁탁 털어 말리기만 하면 입을 수 있었지만 레이스 달린 원피스는 입을 때마다 다림질을 해야만 했다. 원더키디 부츠는 눈에 빠져도 끄떡없었지만 하얀 왕리본 부츠는 양말까지 젖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공주원피스와 하얀 왕리본 부츠가 너무 신고 싶었지만 엄마의 말 잘 듣는 큰딸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 K-장녀, 타이틀 부자가 되다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넘어가자 엄마는 집안의 대소사를 나와 상의하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집에 오시는 아버지는 우리에겐 손님과 같은 존재였다. 엄마에게 큰 딸은 남편이었고, 친구였다.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성실하게 수행한 결과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엄마의 큰 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의젓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가족을 넘어 친구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혼 시절에는 부담 없는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친구들이 결혼하고 각자 가정을 꾸리자 K-장녀 본능이 스멀스멀 기지개를 켰다.


"애들도 어리고 어디 식당가기도 그렇네."


"그럼, 우리 집에서 모이자."


이런 문제로 난감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 불편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은 자연스레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1박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지만 단 한 번도 거절이란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그 결과 집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직장생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년의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든 때는 부장교사를 맡았을 때다. 교직 사회의 특성상 교감, 교장을 제외하면 다 교사다. 이제 갓 교사가 된 신임교사나 교직경력 30년 차의 베테랑 교사나 동등하다. 부장교사는 학생으로 치면 반장 같은 역할이다. 같은 학생이지만 대표성을 띠고 있으므로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려면 어느 정도 강력한 리더십도 요구된다.

그동안 성실하고 의젓하여 어느 상황에서든 1인분 이상을 해내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타인에게 1인분 이상을 해내도록 요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너무 곤혹스러웠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가능한 한 혼자 수습해 보는 것. 그 결과 일 열심히 하는 안쓰러운 부장교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어린 시절 의존적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을 경우 의외로 굉장히 의젓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허구의 독립이다.

- 오은영 박사 '대화의 희열 2'中


# 허구의 독립에서 벗어나는 방법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들도 나에게 강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허구의 나'에 맞추려 열심히 노력했을 뿐. 착한 딸, 좋은 친구, 배려심 있는 동료라는 가면을 진짜 나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가끔은 가족을 떠나 혼자 있기를 갈망하기도 하며 친구집에 가서 친구가 대접하는 음식을 먹으며 놀고 싶기도 하다. "이거 제 일 아닌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동료교사에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허구의 독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주변 사람에게 징징대는 것이라고 한다. 징징거리는 것은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우선 내 안의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골랐다.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할게. 다른 사람 생각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