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하프타임

인생의 항해 경로를 수정하다

by 붙박이별

# 평범하게 사는 것 VS 특별하게 사는 것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란다. 나는 네가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

엄마가 주문처럼 하신 말씀이었다.

대한민국의 중위 나이, 중위 소득, 결혼 평균 연령, 출산 평균 연령. 나의 삶은 대한민국 사회가 인정하는 평균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주문이 강력하긴 했다.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미래를 꿈꿨다.

그래서 학창 시절, 꽤 공부를 열심히 했다. 우리 집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니 공부만이 특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영어교사였던 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다. 너는 공부를 잘하니 교사하면 되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뾰족해졌다. 마치 평범한 삶을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는 교사 같은 평범한 건 싫어요. 제 적성하고 맞지도 않습니다. 오빠가 하면 되겠네요."


인생의 절반을 교사로 살아가고 있으니 하늘에서 큰 아버지가 보신다면 웃으실 일이다.


뉴스에서 중학생 희망 직업은 의사(1위)와 교사(2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고등학생들에게도 교사는 희망 직업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올해 언론에서 교사라는 직업의 민낯을 보여주었고 지인들의 대화 속에서도 교사인 나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희망 직업 순위는 의외였다. 물론 대한민국 중고등학생의 40%가 아직 꿈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뉴스 보도의 골자이긴 했지만.


"엄마, 엄마는 왜 선생님이 된 거야?"


요즘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중학생 아들이 물었다. 나는 왜 교사가 된 것일까? 지난 20년간 가슴 한편에 애써 외면해 왔던 질문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 인생이라는 항해, 경로 수정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때 화장품 연구원이 되고 싶었다. 작가도 되고 싶었다. 화학 과목이 너무 재미있었고 글을 쓰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스트레스가 풀렸다. MBTI가 극 I인 나에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보다는 혼자 연구실에서 연구하거나 글을 쓰는 모습이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인생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와 같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기상조건, 선박상태를 고려하여 항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항해 중 문제가 발생하면 멈춰 서서 항해 경로 수정도 필요하다.

대학 입학 원서를 작성할 때였다.


"여자가 공대를 다니는 것은 아직은 힘들어. 졸업하더라도 취업시장에서 남자애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여자는 분리한 부분이 있어. 잘 생각해 봐."


"글은 취미로 하면 되잖아. 글 쓰는 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주변 지인들은 내 항로에 부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결국 고심 끝에 인생 항해 계획을 수정했고 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한 번 속도를 내기 시작한 배는 쉽게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20년째 그 항로 위를 달리고 있다.

교직생활, 결혼, 출산, 양육.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다. 숨이 턱에 닿아도 멈추기 힘들었다.

용기가 없었다. 멈추면 망망대해에 표류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내 삶의 방향이 맞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생 1막이 이제 막 마무리 되었음을. 인생의 하프타임, 달리기를 멈추고 인생의 항해 경로를 수정할 시간이 되었다.



#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


언론에서는 중고등학생의 40%가 꿈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인생의 전반전을 마친 우리조차 자신의 꿈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이제 갓 10년 남짓 살아낸 아이들에게 꿈을 갖기를 강요하고 심지어 부모의 꿈을 아이의 꿈으로 치환해 버리기도 한다.

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는 안다. 인생이 바라는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 때론 가혹한 순간이 오기도 한다는 것.

그 순간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찾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웃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천천히 관찰을 시작한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으며 혼자 산책할 때 많이 행복해진다.

그런 나를 사랑한다.



# 행복이란 전염병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있다. 상당수의 아이들이 매체에서 비트코인, 주식, 유투버 등으로 한 번에 큰돈을 번 사람들이 비치는 모습을 보고 동경한다는 사실이다.


"선생님, 저는 주식으로 100억 부자 될 거예요."


"저는 로또 당첨돼서 놀고먹을 거예요."


"건물주가 꿈이에요."


돈이 많으면 인생의 항해가 용이해진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크루즈를 타느냐, 통통배를 타느냐는 항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다만 그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이 없다. 목적지는 있으나 항로가 없으니 항해를 시작할 수 없다. 그래서 무기력의 늪에 빠진다.

교사로서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된다. 우울감은 전염성이 빠르다고 한다. 그런데 행복도 전염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방금 하고 싶은 일이 또 생겼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전염시키는 일이다. 함께 돛을 올릴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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