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아이, 나와 마주하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오웰의 '1984'中
"우리 집에서 커피 마실래?"
"아니, 커피숍 가서 먹자."
나는 다른 사람 집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내 이야기를 깊게 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깊게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이 성향은 더욱 심해졌다.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는 잼버리가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TV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그 해 나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친구들과 헤어져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멀었다. 항상 단칸방을 전전했었기 때문에 새로 이사하는 집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아무리 기대를 안 했지만 도착한 곳은 TV에서나 봤던 판잣집이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슬프고 창피했다.
안방과 작은방은 걸어서 1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였지만 아예 건물이 달랐다. 엄마는 작은방에 있는 우리 자매가 걱정되어 밤마다 밖에서 열쇠로 문을 잠갔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엄마를 애타게 불러야만 했고 엄마가 깊은 잠에 든 날은 화장실 가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곳에서 가장 슬픈 기억은 방으로 쥐가 들어왔을 때였다. 쥐가 너무 무서웠지만 엄마는 직장에 가고 안 계셨기 때문에 집에는 우리 자매뿐이었다. 2살 많은 언니라는 책임감이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고 결국 쥐를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기쁘면서 슬펐다.
전학 간 학교의 친구들은 서울깍쟁이 들이었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내가 꽤나 흥미로웠나 보다.
"너 사투리 잘하지? 한번 말해봐."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결국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스스로 과묵한 학생이 되었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하굣길이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아파트가 우뚝 솟은 잘 사는 동네였고 왼쪽은 판자촌이 펼쳐져 있었다. 친구들은 그곳에 사는 아이들을 '판자촌 아이'라고 불렀다.
하교 때 왼쪽으로 가면 친구들이 우리 집을 알게 될까 봐 일부러 오른쪽 길로 갔다가 친구들이 집으로 간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사춘기 소녀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 되어서야 길어진 그림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친해졌다 싶으면 친구는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적당한 선을 유지하기 시작한 것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 선을 지키는 일은 10대 소녀에겐 참 힘든 일이었다.
그 기억은 화상 자국처럼 지금도 마음에 남아 아직도 선을 넘지 못하게 막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 판자촌 아이와 만났다. 눈빛은 차분했으며 단단해 보였다.
"안녕? 힘들지. 하지만 걱정 마. 넌 틀림없이 잘 해낼 거니까. 그리고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있어." 눈물이 흘렀다. 이제 그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