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 엄마의 꿈을 꿔. 아직 엄마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으니까.

by 붙박이별


가장 위대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가장 찬란한 하루는 아직 살아보지 않았다. 가장 무서운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다. 가장 긴 여행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 불멸의 춤도 아직 추어지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때이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 10년 만의 귀가


10년 전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는 워킹딸을 두었다는 죄명으로 우리 집에 갇혔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된 엄마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허울 좋은 명분과 함께...

처음 기한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였다. 하지만 큰 아이가 3학년이 되자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엄마는 떠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 집 살림을 도맡아 하시며 아이들을 돌 봐주셨다. 드디어 지난주 큰 아이의 중학교 졸업과 함께 10년 만에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50대 후반의 젊었던 엄마는 60대 후반의 진짜 할머니가 되어서야 딸의 주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엄마가 떠난 우리 집 주방은 온기를 잃었다.



# 엄마이야기 1_엄마의 꿈


엄마는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엄마를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아빠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두 딸을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도록' 키워내는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꿈이 되었다.

파출부, 청소부, 식당 종업원, 다양한 부업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기 때문에 학창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피로에 지쳐있었다.

언젠가 엄마랑 서류를 뗄 일이 있어서 동사무소에 간 적이 있다. 지문 등록기에 엄지 손가락을 아무리 밀어 넣어도 엄마의 지문이 읽히지 않았다.


"손 쓰는 일 많이 하셨나 봐요."


동사무소 직원이 던진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 지문이 닳도록 일한다는 말이 진짜였나 봐. 신기하다."


나는 먹먹한 마음을 애써 지워내며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의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동안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무사히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매일 저녁이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잔뜩 펼쳐놓고는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이게 몸에 좋다. 이거 먹어 봐라.'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엄마가 떠난 주방은 온기를 잃었고 식탁 위는 엄마가 못 미더워하는 밀키트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 어떠랴. 결혼 전 30년, 결혼 후 10년. 도합 40여 년 동안 엄마 밥을 먹었으니 그 힘으로 남은 시간은 잘 살아가봐야지.




# 엄마이야기 2_고등학교 졸업 인정


동생이 중등 검정고시 인강을 신청해서 엄마에게 내밀었다. 내심 엄마가 이제 와서 중학교 졸업 자격이 무슨 필요가 있나 싶었다. 더군다나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셋 중 가장 강단 있는 동생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엄마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를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문제집을 푸는 엄마의 모습은 퍽 낯설었다.

엄마는 공부한 지 2개월 만에 중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심지어 도덕은 100점을 받았다. 엄마가 평생 법을 잘 지키더니 도덕성이 높아서 그런 거라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며칠 후 동생이 이번에는 고등 검정고시를 신청했다. 엄마는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없었는지 강력하게(?) 못하겠다는 의사를 열심히 주장했고 나도 동조했다. 하지만 동생은 단호했다.


"엄마, 이번에 포기하면 다음은 없어. 그러니까 한 번만 해보자."


"그럼 인강은 비싸니까 문제집만 사줘."


결국 고등 검정고시는 문제집 한 권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엄마는 또 돋보기를 쓰고 고등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2개월 만에 당당히 고등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엄마의 합격증서




# 엄마이야기 3_엄마의 전성기


엄마를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학력 문제는 68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동안 못했을까."


중고등 검정고시를 한 번에 패스한 엄마의 회한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상대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기 어렵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나에겐 엄마의 학력 콤플렉스가 그랬다. 이름 있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나에게 학력 문제는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된 적이 없었으니까. 애써 외면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몰랐던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좀 더 일찍 살펴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제 뭐 할 거야?"


"나 자격증 따려고. 자격증 응시 조건이 고등학교 졸업이었는데 난 이제 조건이 되니까."


엄마가 해맑게 웃으셨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지난 10년 엄마 덕분에 달콤한 시간들을 보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나는 엄마가 매 순간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전성기를 위해 힘껏 응원하려 한다. 엄마가 나에게 늘 그랬듯이.


엄마, 이제는 다른 사람 꿈을 꾸지 말고 엄마 꿈을 꿔. 엄마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