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 빼고 다 해보기

세상에 100% 나쁜 일은 없다.

by 붙박이별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 거야.



#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다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집 경제에 힘을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엄마는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성적인 나는 낯선 환경을 맞닥뜨리는 일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스무 살 여대생이 흔하게 할 수 있는 일, 처음 시작은 과외였다. 과외는 시간대비 페이가 센 편이었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여유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과외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편이어서 새로운 아르바이트는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힘들지 않은 일을 원했다. 백방으로 찾아 헤맨 끝에 예식장 안내데스크, 신문배달, 만두공장 등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 운수 좋은 날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주유소에서 와이퍼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와이퍼를 파는 만큼 인텐시브가 주어지기 때문에 판매량이 중요했다. 출근 첫날, 와이퍼를 사달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하루종일 일하고도 단 한 개도 판매하지 못했다.

두 번째 날, 첫날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판매를 시작했다. 첫 와이퍼를 팔고 나자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감이 붙자 판매량도 쑥쑥 늘기 시작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 마음의 근육 키우기


주유소는 서초법원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 때문에 손님은 40대 이상의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판매를 하기 위해 말을 꺼내는 일이 부끄럽긴 했지만 사회생활의 예행연습이라 생각하면 그럭저럭 할만했다. 두 번째 날의 판매실적은 12개였다. 무려 120% 상승이었다. 자신감도 한껏 솟아올랐다.

삼일째가 되자 목표를 20개로 상향 조정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삼일 만에 판매실력은 크게 성장했다. 주유소로 고급 은색 차가 한대 들어왔다. 창문이 열리고 한껏 멋을 낸 내 또래의 젊은 여자아이들이 보였다. 차로 다가가자 쓰레기를 치워 달라며 건네주었다. 뭔가 부끄러웠다. 쓰레기만 치워주고 결국 판매는 하지 못했다.

그 순간만큼은 손님과 점원이 아닌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하는 내 모습과 고급차를 타고 놀러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그만둘까' 잠시 고민했지만 고작 이런 일로 그만두는 것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네 번째 날 출근했고 일주일간의 아르바이트 기간 중 최고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내 마음의 근육도 한 뼘 자라났다. 가끔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20대의 앳된 학생들을 만나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놀고 싶은 마음, 또래를 상대할 때 '을'이 된 것 같은 불편한 마음, 타인에게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힘껏 응원해 주고 싶다.




# 돈 주고 배운 인생교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만두공장에서 중식당에 공급할 군만두를 만드는 일이었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두를 만드는 영세한 업체였다. 사장님 부부와 고등학생 두 아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직원의 전부였다. 여름 방학 내내 어두컴컴한 지하 공장에서 하루 5시간씩 만두를 빚었다. 사장님과 두 아들은 성격도 싹싹하고 친절했으므로 아르바이트생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 문제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나도 사장님이 돈을 주시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두 달이 지나자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노동부에 신고할 건데 너도 할 거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친하게 지낸 우리들이 부모님을 신고한 것을 알면 사장님의 아들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돈 받기를 포기했다. 비록 돈은 못 받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므로. 물론 교훈도 얻었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생교훈을 얻는데 비싼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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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크리스마스, 그 따스함에 대하여...


세 번째 아르바이트는 신문배달이었다. 아르바이트도 중요했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도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남들이 잠든 새벽시간 신문배달은 아주 매력적인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문은 신청하는 것보다 끊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개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신문을 끊어달라는 손님보다 무조건 넣으라는 사장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끊어달라고 했는데 계속 신문을 넣고 대금을 지급하라는 요구에 화가 났을 것이고 그 화는 고스란히 아르바이트생에게 쏟아졌다. 새벽 4시에 갑자기 문을 열고 나와서 육두문자를 해대는 손님에게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꼼짝없이 서서 당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날짜는 12월 24일. 그날도 어김없이 신문을 돌리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어두운 새벽,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뼛속 깊이 깨달은 날이기도 했다. 문 앞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의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손에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이 들려있었다.


" 학생, 고생이 많아요. 매일 아침 이렇게 신문 넣어줘서 고마워요. 별건 아니지만 날이 추우니까 써요. 메리 크리스마스!" 초록색 체크무늬 목도리였다.


"감사합니다."

목이 메어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그 겨울, 신문배달하는 내내 따뜻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오는 택배아저씨,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 가스검침원 분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선물을 건넬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다 할아버지 덕분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차갑고 냉정한 세상 소식들로 가득 차있다. 이웃들과 인사 조차 이상하게 느낄까 봐 꺼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미소가 주변에 스며들고 그 따뜻함이 번져 세상을 따뜻함으로 물들이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