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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Dec 15. 2023

불협화음

아빠에게 전하는 늦은 인사

불협화음 : 완전 화음들 속에 들어가 음악을 보다 높은 단계로 만들어주는 역할

# 불협화음의 시작

  꽤 잘생긴 외모를 가졌던 아빠는 그에 알맞은 패션 센스의 소유자였다. 옷은 속옷도 다려 입을 정도로 깔끔했고 운동화는 늘 하얗다 못해 빛이 날 정도였다. 물론 그 운동화를 하얗게 빨아 대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아빠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학교 앞에 아빠가 날 데리러 오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바람이 무색하게도 아빠는 늘 바빴다. 요즘으로 치자면 MBTI가 극 I인 나와는 달리 아빠는 극 E였던 것이 분명하다. 아빠와의 첫 번째 불협화음이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아빠를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여고생이 되었고, 건설업을 하던 아빠는 IMF의 직격탄을 맞아 더는 바쁘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리 놀이동산 갈까?” 아빠가 물었다. 입시 준비로 일분일초가 아쉬웠기 때문에 거절할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결국 “그래.”하고 수락을 했다. 아빠와의 두 번째 불협화음이었다. 사실 놀이동산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빠와 나를 보니 그럭저럭 즐거웠으리라 짐작할 뿐.


# 이별은 항상 예고없이 다가온다.

   어느덧 직장인이 된 나는 더 바빠졌고, 퇴직을 한 아빠는 더 한가해졌다. 늦가을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TV를 보던 아빠가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약 갖다 줘?”하고 물었다. 직장인들이 으레 그렇듯 일요일 저녁이면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에겐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다. 건강한 사람도 가끔 큰 병에 걸린다. 아빠에겐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급하게 대학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빠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빠와의 마지막 불협화음이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핸드폰에 확인하지 않은 음성 메시지를 발견했다. 아빠였다. 본가에서 독립한 후 처음 받는 것이었다.  

  “그냥, 이번주는 안 오나 해서 전화해 봤어.” 쑥스러운 듯한 목소리, 아빠가 남긴 마지막 인사였다.


# 늦은 인사

  어느덧 아빠가 떠나고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완전 화음들로만 가득 찬 인생은 없다는 것, 누구나 불협화음 하나쯤은 안고 살아간다는 것, 인생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온전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와의 불협화음이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늦었지만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아빠, 우리 꽤 괜찮은 부녀였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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