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주일 정도 학교를 쉬었다. 수두에 걸려 강제 휴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신나게 놀았다. 하루, 이틀, 삼일째가 되니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하루를 계획 없이 보내는 것이 걱정되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공부할 시간과 운동할 시간을 구분하고, 핸드폰도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아이는 분명 강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문득 엄마 잔소리를 들어 본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는 지금도 잔소리를 하신다. 다만 내 자아가 성장한 크기만큼 엄마의 잔소리는 그 힘을 잃어갔을 뿐. 엄마의 잔소리는 지금 내 양심 한구석에 세를 들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 아들의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도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안 하고 엄마, 아빠처럼 핸드폰 보면서 침대에 누워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고. "
그런가?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격렬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험에 지쳐갈 때였다. '어른은 자격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흐르면 주어지는 것인데 왜 나를 평가하고 간섭하는 것인가? 불공평하다.'라는 생각에 힘들었다.
그때의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어른은 스스로가 도전하려고 용기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중학생 아들은 이것이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라고 했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아이는 아직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책임도 내가 오롯이 짊어져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인생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다 결국 주저앉게 된다. 일으켜주는 사람도, 흙 묻은 무릎을 털어주는 사람도 없다. 계속 주저앉아있든, 다시 일어서든 어른인 나의 선택일 뿐.
인생은 누구에게나 1 회차다. ‘다시 한번’은 없다. 어른도 모든 것이 처음이다. 처음에 완벽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다. 실패하더라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거나 해보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의 종착점은 모른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매번 시도한 그 ‘아무거나’가 쌓이고 쌓여 인생에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