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감기가 걸렸다. 직업의 특성상 목을 많이 쓰다 보니 감기가 걸리면 목이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1~2주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던 목감기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낫지 않고 있었다.
#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골병든다.
며칠 전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고 있지? 계절이 바뀌었으니 안부전화다. 아픈 데는 없고?"
제주도에 살고 있는 28년 지기 친구였다. 20대 시절, 고생하며 학원을 운영한 그녀는 39세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살겠노라 제주도로 내려간 지 벌써 햇수로 5년이 되었다.
"나야 잘 지내지. 감기가 걸렸는데 잘 낫지를 않네. 늙었나 봐."
"맞아. 나 어금니뼈가 녹아서 이가 빠졌어. 요새 임플란트하러 다녀. 너도 몸관리 잘해. 감기 우습게 보지 말고. 누가 '젊어서 고생을 사서도 한다' 그랬냐?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서 골병든다'가 맞는 말이지. 너도 건강 우습게 보지 말고 관리 잘해. 아프면 병원 꼭 가고. "
친구의 말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임플란트라니. 그런 건 할머니가 되어서나 할 줄 알았는데... 노화는 소리 없이 성큼 다가와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시간은 훨씬 빨리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병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품냄새가 싫고, 대기할 때 만나는 아픈 사람들의 얼굴이 보는 일도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 년에 서너 번 갈까 말까 한 병원을 오늘 가기로 한 것은 순전히 친구의 전화 때문이었다.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생의 셈은 정확하다.
의사는 목감기가 아니라 성대결절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꽤 불편했을 텐데..."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프면 빨리 병원을 올 것이지 뭐 하려고 한 달씩이나 참고 있냐.'라고 책망하는 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기 위해 식빵 한 조각을 대충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약을 한 봉지 털어 삼키자 알약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만하던 배려가 정작 나에게는 참 어렵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혼자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나빴던 기분도 어느새 괜찮아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 며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콧노래조차 흥얼거리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크게 소리 내면 쉰소리가 나고, 작게 내면 아이들이 들리지 않으니 너무 불편했다.
지금 나는 '나를 배려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생의 셈은 정확하다. 친구는 젊어서 고생을 한 대가로 물질적 풍요를 얻었으며 건강을 잃었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은 대가로 근면성실한 직원,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을 얻고 목소리를 잃었다.
출처 : Pixabay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센 언니가 되고 싶었던 이유.
- 타인에게 더 이상 친절하지 않고, 나에게 친절해지고 싶다.
- 타인을 그만 배려하고, 나에게 더 배려하고 싶다.
- 좋은 교사, 엄마, 아내라는 타이틀을 잃는 대가로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인생의 셈은 정확하니까 하나를 얻고 싶다면 하나를 내어 놓아야 한다. 이제 나는 그럴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