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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Aug 25. 2024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길모퉁이를 돌면 있을 그것을 기대하고 행복해하는 일


 금요일 밤 10시, 요양보호사 학원 앞 치킨집.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딸랑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쭉 빼고는 얼굴을 확인한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를 설레며 기다려본 것이 언제인가 싶다. 이 설렘이 낯설지만 좋았다.

 잠시뒤 머리띠를 하고 가방을 멘 한 여자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들어온다. 이에 질세라 나도 강렬하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여기야!"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는 올초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한 후 요양보호사에 도전 중이다. 엄마의 나이는 69세. 평생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일을 하던 엄마가 앞치마대신 가방을 메고 국자대신 연필을 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뭐 하러 힘든데 공부를 하냐?'라고 만류했었다.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네친구들과 아침운동을 하고, 모여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누워서 유튜브나 TV를 시청하는 평범한 일상대신 엄마는 도전을 선택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학원을 다니며 열공하는 엄마는 나이가 제일 많은(?) 덕분에 반장이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타고난 근면, 성실함으로 매일 일찍 학원에 가서 동기들 책상을 닦고 강의실 정리를 한다는 엄마는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엄마, 여기야!"

 금요일 밤, 치킨집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후라이드 치킨과 제로 사이다를 나눠먹으며 엄마의 요즘 일상을 나눴다. 동기들과 맥주집에서 번개를 한 이야기, 다음 주에 맛집 탐방을 가기로 한 이야기, 시험점수가 낮아 걱정인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 위로 꿈 많은 20대 아가씨의 모습이 겹쳐졌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고 어려운 형편에 아이들을 길러내느라 고군분투하며 사라져 버린 엄마의 20대가...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그렇게 끝나버릴 듯했던 엄마의 인생은 새로운 모퉁이를 만났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설령 나쁜 것이 있더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엄마도 나도 알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퉁이를 돌면 있을 그것을 기대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미리 걱정하거나 단념하는 것은 덜어내자.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오늘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미래가 제 앞에 쭉 뻗은 곧은길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걷다 보면 길 모퉁이에 이르고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 <빨강머리 앤> 중 -

길 모퉁이를 돌면 가장 좋은 게 있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다시 걸어 나가 새로운 모퉁이를 만나면 된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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