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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Sep 05. 2024

고기가 맛있는 건 엄마도 알아

'엄마'와 '나'의 공존을 꿈꾸며

# 엄마의 반찬


"반찬 해 놓을게. 집에 시간 내서 올래?"

마는 50을 바라보는 딸이 반찬을 하는 것이 힘들까 봐 전화할 때마다 걱정이다. 수술까지 했으니 걱정은 더 늘었다. 불량주부이긴 해도 나도 어엿한 17년 차 주부인데 조금 과하다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한번 가져오면 며칠은 집밥 걱정 없으니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서 옛말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라고 했나 보다. 엄마는 가지가 두 개(동생과 나)밖에 되지 않는데도 매일 신경 쓰라 분주하다.

"내일 갈게."

인심 쓰듯 엄마에게 대답을 했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보물상자에서 보물 꺼내듯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쟁여놓은 반찬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깻잎장아찌, 오이지무침, 양념갈비, 파김치, 진미채무침, 무나물.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끊임없이 나오던 반찬의 행렬은 마지막 사과 2알까지 꺼내고 나서야 막을 내렸다.

이제는 맛을 평가받을 시간. 나중에 먹겠다는 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 엄마는  구운 갈비를 살까지 발라서 내 입에 넣어주고야 손을 멈췄다.


"맛있네."


한마디를 듣기 위해 엄마는 며칠 동안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을 것이다. 살을 발라내고 남은 갈비뼈는 반찬통에 차곡차곡 담겨 냉장고에 들어갔다. 아마도  소박한 저녁밥상에 오를 것이다.




# 고기가 맛있는 건 엄마도 알아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갈비를 구웠다. 살을 발라서 아이들 그릇에 놓아주었다. 살을 바르고 남은 뼈는 아까우니 나의 몫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밥을 먹던 아들이 고기를 집어 내 숟가락 위에 올려 말했다.

"엄마, 뼈를 왜 먹어? 고기가 더 맛있는데. 고기 먹어!" 


아들, 고기가 뼈보다 맛있는 건 엄마도 알아. 너 더 먹이려고 그런 거지...


나도 엄마가 아닌 오롯이 '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갈비를 먹을 때 뼈는 쳐다보지도 않고, 수박은 가운데 맛있는 부분만 먹고, 치킨은 다리만 골라 먹었으며 자식이 벼슬이나 되는 양 엄마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쓰던 시절이. 명절이면 하루종일 전을 부치는 엄마 옆에 앉아 막 부쳐낸 전을 날름날름 받아먹던 시절이.



#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노 대가로 돈을 벌고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 이 보편적인 이치에서 엄마는 예외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서 엄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 탈무드 -


'엄마니까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보편적 진리.

이 당연한 진리 앞에 '엄마'라는 굴러들어 온 돌은 박힌 돌인 '나'를 밀어내고 내 안에서 몸집을 불렸다. '엄마'와 '나' 사이에 경계가 희미해졌다. 엄마역할에 충실할수록 사람들은 '좋은 엄마'라고 칭송했고, 그 사실은 퍽 만족스러웠다. 내 안에서 '엄마'가 커질수록 '나'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 '엄마'와 '나'의 공존을 꿈꾸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로서 바로 서는 일이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타인도 사랑할 힘이 생긴다. 희미해진 경계에 금을 그어본다.

저녁 음악회를 가고, 아이들에게는 배달음식을 시켜줬다. 고기만 먹고 뼈는 버렸다. 억지로 학원보내는 대신 내 노후를 위해 저축을 시작했다. 무료 헬스장 대신 비싼 돈 주고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아이들 옷대신 내 핑크색 셔츠를 구매했다.

엄마라는 역할을 조금 워내니 '내'가 보 시작했다. '엄마'와 '나'의 공존을 꿈꾸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 고기 좋아해.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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