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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y 14. 2021

뉴저지에 살 수 있었을까?

<너로부터 분리되다>


  이곳은 New Jersey Long Beach Island.
석양이 지는 아름다움이 그보다 더 빛나는 아내의 자태로 매번 묻히고 만다.


  사랑스러운 아내가 곁에 있다.

그리고, 아내와 나를 딱 적당할 만치 나누어 닮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이라는 뻔한 표현밖에

쓸 수 없어 되레 화가 나는 두 아이가 곁에 있다.

완벽한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사방이 빛이어서 어둠이 들어올 틈이 없다.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말했다.

“Love is merely madness.”

사랑은 그저 미친 짓이라고.

그렇다면 결혼은 내가 저지른 미친 짓 중

최고로 멋진 미친 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 많이도 다투었다. 아내와의 연애를 돌이켜 본다.

지금 생각하면 일일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들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다투고도

그리움의 무게를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달려가 끌어안으며 화해하고…

매번 힘에 부치면 놓아버리고 마는 것이

나의 고질병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다투었던 부산 해운대 거리…

이번엔 정말 헤어질 거라며 씩씩대면서

다음날 혼자 ktx를 타고 서울로 왔을 때…

다투면 절대 먼저 전화하지 않는

너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받자마자

내가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지금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한 내가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몰라.

여전히 마음은 너에게 삐져 있었지만,

그보다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컸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바로 너에게 달려가 너를 안으며 했던 말


“우리 이제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 이런 거 그만하자.

이러다 정말 헤어질까 봐 살 떨려서 더는 못하겠다.

대신, 결혼하자! 싸워도 절대 헤어질 수 없게.”

  

그렇게 단 한 번의 잘한 일로

나의 무수한 잘못들을 덮어버리며

세상 최고의 행운아가 될 수 있었다.

                   딱 한 번!!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말했다.


  마음은 코인과도 같다. 시시각각 요동친다.

그래서 마음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음이 반 토막 난 순간에도 난 결국 너였다.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너는 곁에 없다.

네가 두 번의 결혼을 해내는 동안

나의 시간은 여전히 너를 향해 있다.

나의 몸은 너의 존재조차 잊은 것 같은데

나의 맘은 끝없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면서도

아직 너를 찾고 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분리된다면

뭐하러 마음이 몸속에 붙어있나 싶다.

마음도 탈부착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오늘같이 글을 빌미로

너를 마음껏 그리워해야 하는 날에는

마음을 따로 떼어 놓아 좀 쉬게 해주고 싶다.

마음도 지치면 좀 쉬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몸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은 반맞반틀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보다 더 자주 우리는 몸 따로 마음 따로 현상과

부딪혀 싸워야 하니 말이다.


  가령 일요일, 하루 종일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늦잠도 자고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 보고 싶어도
몸은 육아에, 집안 잡다한 일에, 분리수거에,

그 외 또 잡다한 일에 치여야 하고 월요일 아침,

마음은 여전히 이불 속이지만 몸은 어느새
출근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분리되고 있는 것은 몸과 마음뿐만이 아니다.

과거의 시간과 분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당연히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발전이 있는 거겠지만 불행히도 현재 시점으로는 나의 모든 영광의 순간들이 과거에 있다. 그때는 당연하게 가지고 누렸던 모든 것들
이 희미해진다. '내가 한때나마 그런 삶을 살긴 한 걸까?' 하는 의심마저 생긴다.


  사랑을 속삭였던 달콤 바다에서의 기억,

골프에 빠져 죽자 살자 매달리며 1 언더까지 쳐냈던 기억, 모든 것이 다 잘될 것만 같이 순조로웠던 과거의 기억이 사실은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것은 아닐까? 기억은 때때로 각자의 구미에 맞게 조작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몰려든 순간도 있었고 떠나간 순간도 있었
다. 영원한 인연인 듯 보였지만 아무 이유 없이 끊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매듭짓다가도 어떠한 이유로 관계를 매듭짓기도 했다.


  사실 볼펜 하나 잃어버려도 온종일 찾아 헤매는

나로서는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뼈아프지만

그중에서도 너와의 미래를 잃은 것이 너무 아프다.


  만약 해운대에서 마지막으로 다투었던 그날 밤,

내가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우린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다음 날 아침 너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택시를 돌려 너에게로 갔다면 우린 한 번 더 사랑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말 대신 결혼하자는 말을 건넸더라면 우린 결혼해서 뉴저지에 살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부질없는 미련 속 그리움은 어느새 또 나를 납치해 평온했던 과거의 어느 날로 데려다 놓는다.


# 소파에 다정하게 누워 TV를 보는 연인. 여자는 말한다.


“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맨해튼 가서 살까?”

남자는 말한다.


“ 맨해튼도 집값 장난 아니라던데…”

“ 좋아 내가 한발 양보해서 뉴저지 어때?

사실, 뉴저지가 살기는 더 좋대.”


“ 그래, 뉴저지 좋다!! 콜!!”

그날 소파에 누워 뉴저지 얘기가 나오자마자 청혼을 했었더라면  우린 지금 뉴저지에 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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