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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y 20. 2021

원본예찬

[원본]-서류를 작성한 자가 그 내용을 확정적으로 표시한 것으로서 최초에 작성한 서류를 말한다.    


원본은 위의 사전적 정의처럼 최초의 그 어떤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원본의 가치가 뛰어난 경우 셀 수 없는 copy본과 아류들이 LTE급 속도로 양산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장되기도 한다.    


바야흐로 copy의 시대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넘쳐나는 세상. 원래의 것들을 얼마든지 복제해 똑같이 구현해 낼 수 있고 원판 불변의 법칙은 깨진 지 오래다. 원판이 그닥이어도 의느님의 은혜를 입으면 렛미인의 기적을 맛볼 수도 있다.


진짜 원조집은 속속들이 옆에 문을 연 아류 원조집 들에

둘러 쌓여 어느 집이 진짜 원조집인지 한참 동안 탐정 놀이를 해야 한다.


이렇듯, 원본과 복사본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원본으로서의 가치는 잃지 않았다. 가령, 피카소가 그린 그림 원본과 똑같은 복사본은 그 가치를 평가할 때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피카소가 직접 그린 그림 그대로의 상태, 즉 원본이라야 온전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기밀파일을 담은 USB도 주인공과 악당 사이에서 그 원본을 두고 첨예한 줄다리기 싸움을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본은 세상에 존재할 때부터 유일한 하나이지만 복사본은 수백만 개로 번식된다 하더라고 그저 복사본인 것이다. 그것이, 원본의 태생적 힘이요, 복사본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원본이 가진 또 다른 중요한 힘은 편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편집된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취합하는 모든 정보,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 실은 모든 것들이 편집본이다. 원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편집된 면만을 보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판단했다가 멋쩍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내는 데 이 원본만 한 것이 없다. 원본은 편향적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과거의 많은 것들을 버리려 시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철 지난 연애편지, 각종 롤링 페이퍼, 군대에서 썼던 일기, 누군가 나에게 주었었던 호감의 흔적들... 그 모든 것들이 단지 데이터나 활자로 취합될 수 없는 고유의 원본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본은 제아무리 뛰어난 아류라 할지라도 그 고유의 영역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다. 원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발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사수하려 그토록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유하고 있어 가치 있는 것은 반대로 잃어버리면 굉장히 위험해지는 것이기에...    


원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서열이 있다면 그건, 원래의 본 마음... 초심이 아닌가 싶다. 초심을 잃으면 원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오늘도 난, 나의 본래 마음을 잃어 버렸을까 봐 허둥지둥 마음을 뒤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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