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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y 21. 2021

언젠가 그럴듯한 면으로 만나게 되기를


점 하나 없는 무결점의 새하얀 백옥같은 피부를 동경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사랑에 빠졌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일지라도 어김없이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나의 fantasy였다.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에 흰 피부, boxy 한 흰 면티에 청바지를 입은 누군가가 나를 향해 걸어오기라도 하는 순간엔, 심장이 층간소음을 일으키며 마치 밖으로 뛰쳐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점이 잡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이 없는 사람은 뭔가 완벽한 느낌이 들었다. 점이 없는 사람, 구레나룻조차 꼬불거리지 않고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곧게 자리 잡은 사람, 뒤통수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짱구인 사람, 향수 냄새가 아니라 샴푸 향이 느껴지는 사람…그런 유의 사람을 마주할 때면 우성인자를 향한 경외심이 온몸으로 퍼져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런 나의 fantasy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TV 속의 그녀였다. 혜성과 같이 등장한 그녀는 특유의 발랄한 표정과 인형 같은 미모로 단숨에 TOP STAR의 반열에 올랐는데 마치 내가 발굴한 스타인 것처럼 자부심 비슷한 감정마저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코에 점이 하나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점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그 점 이후로 코에 있는 점은 일명 매력점으로 불리었으며 의사들은 한술 더 떠 코에 있는 점은 사람들의 시선을 코로 집중시켜 얼굴이 더 작아 보인다는 그럴듯한 말로 많은 여성들을 점의 세계로 초대했다. 아무튼 그녀의 매력점 덕분에 나의 점=잡티라는 피곤한 공식이 깨질 수 있었다.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2009년인가 방영했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화제성이 뛰어난 드라마였기에 오며 가며 잠깐씩이라도 볼 수가 있었는데 대략의 줄거리가 아내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다시 화려하게 남편 앞에 나타나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남편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도 아닌데 아내를 못 알아본다. 단지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막장드라마 라고 혀를 차면서도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였다. 다소 과한 설정이긴 했지만 그러고 보면 점 하나가 사람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글에도 점 하나는 미묘하지만 나름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마침표는 뭔가 한 문장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정리해주는 느낌을 준다. 쉼표는 독자에게 같이 쉬어가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즐겨 쓰는 시그니처 점 세개… 말 줄임표다. 한때 모든 말에 말 줄임표를 쓸 정도로 말 줄임표 마니아였다. 마침표를 찍으면 뭔가 단호하고 권위적인 데 반해 말 줄임표를 쓰면 뭔가 여리여리한 감성이 생김과 동시에 알 듯 모를듯한 여운 감이 생겨났다. 그런데 항상 점 세 개를 찍으면 한글 프로그램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 속상했었는데 말 줄임표는 도구에 들어가 특수문자로 사용해야 오타로 인식 안 한다는 별것 아닌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그런데... 점세개가 어중간하게 중간에 위치해 있어 마음에 안든다. 그냥 오타로 쳐야지... 


점은 물체의 최소 단위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단순한 점의 배열이 효율적으로 빌드업될 때 우리는 언젠가 예술적인 면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로운 날들의 반복이었다. 잠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연습,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연습, 어찌 보면 수행자와 같은 하루였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어떤 분야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삶은 공통적이게도 조금은 규칙적이고 지루한 하루의 반복이었다. 나는 경쟁하지 않았다. 단지 하루하루를 불태웠을 뿐이다. 그것도 조금 불을 붙이다 마는 것이 아니라, 재까지 한 톨 남지 않도록 태우고 또 태웠다. 그런 매일 매일의 지루한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치열했던 하루의 반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강수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中에서…    


나와 여러분들의 내일을 응원한다. 오늘의 점, 내일의 점, 그렇게 하루하루의 점이 쌓여 언젠가 그럴듯한 면으로 만나기를…        


PS. 만약 한 번의 연애를 더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날이 허락된다면 그녀에게 물어볼래요. “넌 점이 왜 이렇게 많아? “응? 나 점 별로 없는데. “ ”아니야, 너 점 엄청 많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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