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테리 Jun 07. 2021

완벽한 여행

시계의 시침을 돌리고 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거행을 택할까? 지금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이들은 당연히 돌아가지 않을 테지만 나는 지금의 나를 할 수만 있다면 암살하고 싶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휘리릭 갈 것이다.



‘그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 엄마 뱃속의 태아 시점…? 아니야…. 기억에는 없지만 뭔가 지루했었던 것 같아. 그럼 몇 살 정도가 좋을까? 그래도 조기교육이 중요하니까 될 수 있으면 어릴 때가 좋겠지? 한 3~4살? 아니지…. 그때부터 공부하면 정작 고등학교 들어가서 지칠 것 같아. 그냥 깔끔하게 군대 갔다 온 직후로 할까? 그래, 군대에 굳이 또 갈 필요는 없지. 내가 싸이 형님도 아니고. 아…. 아니야…. 군대 갔다 오면 아저씨 될 텐데…. 아저씨로 시작하긴 싫어…. 뭔가 한 가지를 제대로 팔려면 역시 유년 시절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5살로 가서 영어유치원 다니고 골프를 시작하는 게 좋겠어. 축구나 야구보다는 골프가 낫겠지? 그래, 축구는 막 몸싸움도 해야 하고 야구도 류현진 보니까 하고 싶긴 한데 수술도 너무 많이 하고…. 무엇보다 시속 150~160km 하는 공에 맞으면 너무 아플 것 같아…. 억, 생각만 해도 관절이 얼얼하다. 돈 많이 버는 건 좋은데 아픈 건 싫어. 그래, 지성을 겸비한 골프선수가 되자!! 5살!! 꿈은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별명은 타이거 우돌!! 아…. 근데, 골프선수는 느낌이 너무 정적이야…. 뭔가 역동적인 느낌이 없어. 아!! 힙하고 플렉스 할 수 있는 힙합뮤지션이 좋겠다. 그래 래퍼가 돼서 라이머로부터 안현모를 사수하자!!


아니지. 그럼 H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잖아. 그래 안현모를 놓치는 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지조를 지키자!! 또 싸워야 하는 게 겁이 좀 나기는 하는데…. 내가 다 참으면 되지. 그래 다 져주자!! 자존심 따윈 버리자!! 돈 많은 사랑의 노예가 되자!! 그래, 돈 많은 사랑의 노예! 뭔가 느낌 있다.


또 뭐가 있지…? 기억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가는 게 좋을까? 기억도 Reset 되는 게 좋을까? 인생을 시험이라고 친다면 아무래도 기억을 가지고 가는 게 좋겠지? 당연하지. 기억이 리셋되면 H를 못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 오케이. 기억은 가지고 가는 거로 하고…. 그럼 기억해야 할 그것 중에 내가 잊어버린 건 없나?.


아! 로또 번호!!! 흐흐흐~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가만, 역대 로또 최고액이 얼마였더라? 음…. 2003년 18회 당첨금이 407억이었네. 이때 로또 번호가…. 3, 12, 13, 19, 32, 35 이때 당첨자가 한 명이 독식해서 407억이었으니까 그 사람이랑 나누면 200억에 세금 떼고 뭐 이것저것 떼면 100억 조금 넘겠네…. 아하…. 좀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로또를 매주 당첨될 수는 없잖아? 피곤해질 것 같아.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 올 거고 그럼 신변이 노출될 거고 여기저기서 돈 꾸어 달라 그럴 거고, 누군가가 나를 납치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 너무 피곤하다. 로또는 한 번만 되자. 뭐 시드머니 100억이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그럼 100억으로 뭘 해서 불릴까?


2003년 뭐 요 때만 해도 집값이 지금처럼 헬은 아니었으니까 강남에 집 3~4채 정도만 사 놓고…. 아 1가구 1주택이니까 차명을 만들어야 하나…? 이래서 돈이 많으면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걸까? 아, 몰라. 어차피 세금 많이 내잖아. 그리고 또 뭘 할까? 미국 주식 좀 사 놓을까? 그래, 그러자!! 빌어먹을 트럼프가 대통령 될 테니까. 아마존, 구글, 애플, 넷플릭스, 테슬라 뭐 이 정도만 사 놓지. 뭐. 이걸로 용돈벌이나 하고 돈은 비트코인으로 벌면 되니까. 2010년에 일만 코인에 피자 두 판 거래되었으니까. 그 타이밍에 사면 비트코인 하나에 4원? 껌값도 안 되잖아. 너무 아기니까 한 만원 됐을 때 사지 뭐. 2018년에 2,800만 원까지 올랐나? 그리고 폭락했으니까 요 때 일단 한번 싹 정리하고. 그럼 얼마가 오른 거야? 수익률이 2,800% 되는 건가? 100억을 투자했으면 28조가 되었겠구나…. 28조. 그래, 돈은 그 정도면 됐다. 더 많아서 뭐 하냐?. 재벌 돼봤자 피곤하기나 하지. 청문회나 불려가고 재수 없음 징역 가고. 그래 재벌은 되지 말자. 그냥 소소하게 즐기면서 살면 되지 뭐.


그럼 뭐하지?. 정치나 할까? 우리나라 확 바꿔 봐? 아니야…. 정치 해봤자 욕이나 먹지 뭐. 잘해도 먹고 못 해도 먹는데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해? 그래도 뭔가 권력을 갖고 싶긴 한데…. 에이 몰라 이건 일단 보류. 아!! 이거 너무 내 생각만 했나? 사리사욕 채울 만큼 채웠으니까 선한 영향력을 좀 발휘해볼까? 전 세계 어려운 곳에 기부도 좀 하고 전 세계면 1년에 1조 정도 기부하면 되려나? 아. 그럼 28조 가지곤 택도 없겠는데? 좀 더 벌어야겠다.


아. 작년에 코로나 터졌잖아. 잊히지도 않는다. 2020년 3월 19일. 세상 끝날 것처럼 지수가 폭포수처럼 내리꽂히던 날. 계좌 하나 증발하고…. 한강 온도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아마 잠원지구로 터벅터벅 걸어갔겠지. 그래 2020년 초에 인버스에 몰빵 가자. 한 20조 때려 박아서 100% 수익이면 40조 되고 또 2020년 3월 23일 이후로 다시 지수 회복돼서 코스피 3,000시대 됐으니까 인버스 레버리지만 왔다 갔다 해도 얼추 100조까지는 만들 수 있겠다. 그럼 100세 시대니까 1년에 1조씩 기부해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는 있겠지? 아니지, H랑 자녀도 낳을 거니까 두 명 낳는다고 치면 어쩌면 빠듯할 수도 있겠는데…? 애들만큼은 고생 안 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데….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대한민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걸까? 에이, 모르겠다. 내가 좀 덜 쓰고 아끼면 어떻게든 되겠지.


뭘 더 챙겨야 하지? 이 정도면 된 걸까? 어떻게 해야 완벽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신이 나서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겨보지만 언제나 그랬다. 아무리 빈틈없이 짐을 챙기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도 막상 여행지에 가서 보면 빠뜨린 것이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변수들이 있었다. 완벽한 여행이란 없었다. 하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도 없다. 내가 아닌 그 어떤 누구라도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시계 안에 사는 시간이다. 기분 좋은 상상에서 깨어나 순식간에 100조를 잃은 기분이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지금이라도 유한한 시간과 좀 더 친해지는 것. 시간은 기본적으로 소멸되는 것이다. 하루가 소멸되는 동안 나를 채워 나가야 한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서 하루를 사는 것처럼.


젊고, 밝고, 파이팅 있게. 오늘 하루도 그렇게…

작가의 이전글 부끄러움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