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돈을 번다는 것

by bigbird

돈을 번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면 그런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쉬운 사람에게는 쉽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어렵다.


지금껏 직장생활을 하며, 먹고살았다.

또한 저축을 통해 종잣돈을 모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일찍 집을 갖게 된 것은 집 없는 설움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지금껏 현재 이곳에 정착한 지 12년째다.

2000년 결혼을 하고 이사를 6번을 했었다.


처음 신혼집은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었다.

1년 지나고 집주인이 바뀌어, 새로 바뀐 주인이 비워달라고 했다.

2년 계약이었지만, 집주인이 들어온다 하니 다시 집을 구했다.

다시 구한 집은 애초에 집주인이 1년만 전세를 놓고 매매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또다시 매매가 이루어지고, 다른 전세를 알아봐야 했다.


그 당시 전세난으로 전셋값이 많이 올랐다.

가지고 있는 전세금으로는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 22평에 들어가야 했다.


집 없는 설움에 집을 빨리 마련하고 싶어졌다.

살 돈은 없고, 목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분양으로 눈길을 돌렸다.

교통이 좋은 곳으로 원했다.

여러 번 청약을 했고, 많이도 떨어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당첨이 되었다.


공덕역 인근의 25평 아파트 당첨!!!

무척 기뻤다.


전세를 살고 있었지만, 내 집(분양)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덧 입주일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번엔 역전세난.

전세입주 때보다 2천만 원이 떨어져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집주인은 알아서 빼서 나가란다.

그 가격에는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집주인과 몇 차례 전화로 사정하여 시세대로 부동산에 내놓았다.

한동안 집 보러 오는 이가 없었다.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온 사람은 도배, 장판을 해주면 계약을 하겠다고 한다.

세입자인 내가 도배, 장판을 해주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분양받은 새집으로 들어간다는 설렘으로 달랠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났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새집에서 생활할 수 있어서 좋았다.

3년여를 그렇게 살고 나서 육아문제로 이사를 결정했다.

맞벌이를 하느라 와이프 직장 근처로 이사했다.

직장 내에 어린이집이 있었다.


2년을 그렇게 보내고 유치원을 보낼 시기가 왔다.

이제는 아이 학교를 생각해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한 나의 경험상 다니던 도중에 학교를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한 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기를 희망했다.

정착할 집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딸의 안전이었다.

지상에 차가 안 다녔으면 하고 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으면 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찾았다.

지금 딸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나 스스로가 했던 마음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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