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

by bigbird

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약속을 하면 그 장소에서 무작정 기다리곤 했다.
사람에 따라 한 시간, 두 시간을 서성이며 기다리기도 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곧 기다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삐삐가 등장했다.
늦을 경우 음성 메시지나 숫자 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되면서 그것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 시절 공중전화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모두가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풍경이었다.

이어 등장한 시티폰, 그리고 PCS.
마침내 개인 휴대전화 시대가 열렸다.
연결은 더 빨라졌고, 기다림은 더 짧아졌다.

이제는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확인하길 기대하는 시대다.
통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도 그랬다.
지상파 방송의 전성시대에는 일주일을 꼬박 기다렸다가 한 편을 시청했다.
다음 회를 상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설렘이었고 여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여러 편이 한꺼번에 공개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전편을 몰아볼 수 있다.
기다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선택일 뿐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레코드판을 사서 바늘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고,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으며 듣던 때도 있었다.
CD를 지나 MP3를 거쳐, 이제는 스트리밍으로 언제든 원하는 곡을 들을 수 있다.
듣고 싶으면 즉시 듣는다.
기다림은 사라졌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반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언가를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답장이 늦으면 초조해진다.

투자도 그렇다.
코인은 24시간 가격이 움직이고, 실시간 등락을 손안에서 확인한다.
숫자는 마치 게임 머니처럼 오르내린다.
기다림보다는 즉각적인 판단과 반응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즉각적인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묵혀야 제맛이 나는 것들이 있다.
장류처럼, 와인처럼, 사람의 내공처럼 말이다.

자산도 마찬가지다.
좋은 자산을 사서 시간을 친구로 삼고 진득하게 묵히는 것.
그것이 전통적인 성공 방식이었다.

기다림은 느림이 아니라 신뢰다.
시간을 믿는 태도다.

어쩌면 우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다림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