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또 다른 정의
나의 네이버 블로그 > 메모 에는 비공개 카테고리가 하나 있다. 이름은 ‘구덩이’. 첫 글은 18년 1월이었다. 내가 뉴욕에서 돌아온 그 해 그 달이었다.
가끔씩 주기가 되면 나는 구덩이에 들어가 내가 쓴 글들을 훔쳐보듯이 읽고 꿍얼대는 소심한 친구처럼 그 때 당시 느끼는 바들을 주절대고 나온다. 매일 쓰고 있는 일기와도 다르고, 각잡아 쓰는 글과도 다르고, 그냥 정말로 구덩이에 토하듯이 갈기고 오는 글이다. 그러나 어느 한 켠으론 조심스럽게 속살대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에 묻은 비밀의 말들처럼. 소중하지만 버리고 싶은, 버리고자 했지만 소중해마지 않던 그런 문장들인 것이다.
내가 글을 도피처 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구덩이’ 때문이었다. 그 전까진 내가 그런 행동 패턴을 보인다고 전혀 생각치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그렇게 깨닫기 이전에도 으레 그랬을 것이다. 나의 간헐적 문학소녀 빙의 기간은 비록 그 증거가 거의 남아있진 않지만 해마다 많으면 10번, 적으면 4번 정도로 돌아왔고 그건 내 호르몬이 작용하는 기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구덩이를 찾게되는 주기도 마찬가지다.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특히나 더 중력이 작용하는 것 같은 기간, ‘저기압일 땐 고기앞으로 가’지 못하고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구덩이에 남긴 글들 대부분이 그래서 어두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장 인상 깊은 글 중 하나는 그 때 당시 빠져있는 대상과 그에 따른 이상형(이성에 대한) 감상문인데, 지나고 보니 사람의 보는 눈이란 얼마나 부정확한지 또 어찌나 큰 착각과 오해 속에 사랑에 빠지는지 잘 알 수가 있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고문 당하는 기분이지만 구덩이에 들어가면 늘 그 글을 찾아 읽는다. 참… X나게 사랑했다 새끼야.
무튼. 첫 문장으로 돌아가자면, 구덩이가 구덩이이기 전 작성된 글이자, 꿈꾸던 해외 생활을 포기한 채 돌아온 탕아(당시 29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잠재우기 위해 적기 시작한 첫 글에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쓰기를 나의 아빠가 추천해줬다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12살 무렵부터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아빠와 함께 살지 않았지만, 여차저차, 이런 저런 사연 끝에 돌고 돌아도 내가 아빠의 딸이구나 하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그걸 구덩이의 첫 글과,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적으면서 더욱 느끼고 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비우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도피를 결심하면서 키보드를 챙겨 골방으로 숨어드는 그런…….
언제나 구덩이를 찾아야 할 때만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써대던 글쓰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달콤한 일화로 글쓰기를 결심하기에는, 나는 혀를 즐겁게 하는 먹거리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몸소 깨닫는 나이가 되었기도 하고. 또 조금 더 내게 솔직해지고, 나를 더 솔직히 드러내보이며 정화하는 글쓰기가 비록 그 맛은 쓸지라도 건강에 더 좋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기가 되었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써보려고 한다.
- 라고 말하지만 2주만에 찾아온, 어쩔 수 없이 직장 핑계를 댈 수 밖에 없는, 작가…가 되고 싶은 그냥 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