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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Nov 05. 2018

대규모 이주..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금태섭의 <금씨책방> 24

- <엑소더스, 전 지구적 상생을 위한 이주 경제학(Exodus : Immigration and Multiculturalism in the 21st Century>, 폴 콜리어 지음, 김선영 옮김, 21세기북스>


우리나라에서는 난민 신청자들을 둘러싸고 제노포비아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그에 맞선 인권단체들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대규모 이주"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다.


폴 콜리어는, 이주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집단을 1) 이주자들, 2) 이주자들이 떠난 사회에 남은 사람들, 3) 이주자들이 새롭게 이주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상정하고 각각의 집단이 이주에 의해 받는 영향을 경제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민족 혹은 국적에서 정체성을 찾는 태도가 낡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공동체로서 국가의 효용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한편으로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한계를 느끼게 해서 슬프면서도 쉽게 반박을 하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든 태어나는 장소와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에 보다 나은 세상을 찾아 떠날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어차피 현재 소위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이주민의 자손이기 때문에 이주를 막는 것은 사다리 걷어차기라도 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대량 이주를 허용하는 것이 이주민들이 떠나온 사회나 혹은 새로 정착하려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부유국과 빈곤국의 소득 격차는 근본적으로 사회 모델의 차이에서 나오며, 고소득이 가능한 '포용적인 사회 모델'을 만들어낸 원주민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즉 이주민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환기시켜준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차별적, 폐쇄적 파퓰리즘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단순히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기준만으로 이주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의도야 어떻든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특히 이주민들이 가져오는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새로 정착한 사회의 문화에 동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서 필자는 후자를 지지하는데, 이 부분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금지한 프랑스의 조치에 찬성한다.


저자가 쓴, "국제적인 대량 이주는 극단적인 세계 불평등에 대한 반응이다. 이 유례없는 현상에서, 극빈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곳에 삶의 기회가 있음을 깨닫는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적 불평등의 문이 열렸다면 다가올 세기에는 그 문이 닫힐 것이다.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현재 고소득 국가로 빠르게 수렴해가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혁신적 사건이다."와 같은 대목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다가올 세기까지 어려운 환경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이 떠나게 되면 남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아직 충분히 실증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직관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지만, 이주 문제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책.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한다.(다만 번역이 좀 아쉬운 점은 함정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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