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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r 13. 2018

이렇게 시작되었다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14 - 이렇게 시작되었다

TV조선 이진동 기자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취재과정을 소재로 <이렇게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무척 흥미진진한 책. 하룻밤 새 읽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적인 일의 경우에도 끝난 다음에 기록을 남기는 일이 드물다. 기억이 생생한 사건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다보면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생기는데 그런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정당이 선거를 마치고도 공천 과정 등을 치밀하게 되짚어보는 백서를 내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성공을 했을 때는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고, 실패를 했을 때는 힘든 사람들을 왜 괴롭히느냐고 넘어간다. 그런 게 바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원인이 된다.

그런 면에서 국정농단 보도의 주역이었던 사람이 이런 책을 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내용을 읽어봐도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보도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와 TV조선 혹은 조선일보가 긴장관계에 있을 때의 상황, 내부 갈등, 선택된 전략과 그렇지 않은 경로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서까지 상세히 써놓았다. 직장에서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상사나 동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데 그 '기자 근성'에 경의를 표한다. 그 외에 몇가지 생각나는 점을 적어본다.

1. 고영태에 대하여

고영태 등 일부에서 "내부고발자" 심지어 "의인"으로까지 칭송받은 인물들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는데 나도 동감이다.

2. 우병우에 대하여

조선일보의 우병우 보도와 관련해서, 저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두려워하던 것은 미르재단-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보도였지 우병우 관련 뉴스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는데 맥락은 다르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탄핵에 이르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 중 본질적인 부분, 그리고 가장 드러내기 용이한 부분을 공격했어야 하는데 우병우의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은 그런 부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직접 박근혜와 연결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일단 최순실-박근혜의 잘못이 드러난 후에야, "그런데 민정수석은 뭘 했나",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상황에서도 우병우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이 됐었다. 직무유기, 직권남용는 사실 입증이 매우 어려운 죄명이다. 말하자면 우병우는 우리 입장에서 보기에 적의 진영 중 매우 뚫기 어려운 부분이다. 다른 경로가 많이 있는데 굳이 그곳을 뚫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우병우의 잘못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혹시라도 이걸 가지고 우병우를 옹호하는 의미로 오독하실 분은 없으시리라 믿는다.)

탄핵 초기에 당시 야당 의원 일부가 서울중앙지검 앞에 천막을 치고 "우병우를 구속하라"하고 농성을 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나도 한두번 참석을 해서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전력을 낭비해야 하는지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럴 리도 없었지만, 그때는 만일 검찰이 우병우를 구속하려고 해도 구속영장에 써넣을 구체적인 내용도 없을 때였다. 오히려 다른 쪽에 집중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무척 재미있는 책. 강추드린다. 왜 2014년에 고영태로부터 '최순실 의상실' 동영상을 입수했다면서 2016년이 되어서야 보도했을까, 라는 해묵은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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