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⑥ 정치인과 소수자 문제
‘표’ 안되는 소수자 옹호,
하지만 정치의 이유 생각한다면
정치인이 어떤 행사 가는지는
어떤 말 하는지만큼 중요
그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
선거전략 면에서 소수자 문제는
언급 자체가 불리한 경우 많아
하지만 ‘표’만 따진다면
왜 정치를 하는지 의미 없어져
지난해 퀴어문화축제 참가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던
부모님들 모습 가장 감동적
비난·욕설 등 후폭풍 거셌지만
모처럼 해야 할 일 한 것 같아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 반드시 듣는 얘기가 있다. “네 자식이 호모면 좋겠느냐.” “그래, 남자 며느리 맞아서 행복하게 살아라.” 백이면 백, 예외가 없다. 한번은 국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이 그런 댓글을 단 것도 봤다. 도대체 헌법 교과서를 읽어보시기나 했을까. 단순히 토론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이런 얘기를 듣는데 실제 성소수자나 그 가족들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까.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해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다.
정치의 70%는 ‘말’로 한다고들 하지만 어떤 행사에 참여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떤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는지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디를 가는지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일정을 뜯어보면 어떤 문제에 관심이 많고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선거 때 구성되는 캠프마다 일정팀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의 경우 유세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만큼 어떤 장소에서 유세를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치열한 토론의 대상이 된다. 대선주자 급이 아닌 평범한 초선 의원도 공개적인 일정을 정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하물며 퀴어문화축제처럼 ‘뜨거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우리 의원실 구성원들은 참가 여부 및 참가한다면 어떤 식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의논을 많이 했다. 그때 고려했던 것들을 얘기해보면 이렇다.
얘기해도 위험, 안 해도 위험
첫째,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할 것인가. 순전히 선거 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리한 이슈들이 있다. 소수자 문제가 대체로 여기에 포함된다. 예를 들면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의 인권 문제가 그렇다.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를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피의자나 피고인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엄벌주의나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그런데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의 경우에는 또 다른 딜레마가 있다. 그런 정당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피의자의 인권 보장에 반대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들으면 실망하게 된다. 결국 정치인들은 소수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꺼리게 된다. 이렇게 얘기해도 위험하고 저렇게 얘기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는 없다. 설사 표를 잃고 선거에서 불리해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다면 애초에 정치를 왜 시작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소수자,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해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들의 얘기를 알리겠다는데 최소한 옆에는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더구나 성소수자 문제는 보편적 인권에 관한 것이다. 퀴어문화축제 현장에는 각국 대사를 비롯한 외교사절들도 참여한다. 매년 부스를 개설해서 지원하는 기업체도 있다. 우리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참여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가. 우리나라 퀴어문화축제는 지난해에 19회를 맞았다.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이 행사에 처음 참석한 사람은 17대 국회의원인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현애자 의원이다. 2004년 제5회 축제 때였다. 개막식 무대에 오른 현 의원은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라는 영화를 보고 성적 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게 됐고 무지와 편견을 버리게 됐다”고 밝혀 300여명의 참여자로부터 환호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진보정당이나 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 몇분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를 했는데 모두 무대에서 축사를 했다. 남성 의원으로서 참석한 사람은 고 노회찬 의원이 유일하다. 2007년도 제8회 축제에 처음 참석해서 무대에 올랐던 노 의원은 그 후로도 몇차례 참석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일반 시민과 똑같이 축제에 참여해서 즐기기로 했다. 참여자가 많지 않고 행사를 여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초기에는 국회의원들이 무대에 올라서 축사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미 그런 단계는 지났다. 즐겁게 공연을 하는 와중에 지루한 얘기를 늘어놓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정치인 축사가 없어진 지도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마 인사말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어도 거절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해 7월14일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보좌진 중 시간이 되는 두명과 함께 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한편에서는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있었지만 축제 참가자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앞에서는 흥겨운 공연이 펼쳐졌고 사람들은 부스를 돌아다니며 ‘퀴어문화축제 굿즈’를 구입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낯이 뜨거워질 수도 있는 특이한(?) 상품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1회용 문신 스티커나 기념 티셔츠 등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도 스티커를 사서 팔이나 손에 붙였다. 퀴어 퍼레이드에 딱 어울리는 구호 “프라이드!”였다. 지방에서 퀴어 축제를 기획하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서울과는 달리 아직 적대적인 환경에서 축제를 준비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듣고 힘닿는 대로 돕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마침내 퍼레이드 순서가 됐다. 수십대의 바이크 부대가 앞장을 서고 그 뒤로는 짐칸을 무대로 개조한 트럭들이 따랐다. 우리는 바이크 부대 옆에서 행진을 하다가 대학생 성소수자 모임이 중심이 된 트럭을 따라가면서 공연을 구경했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젊은 학생들은 지칠 줄 모르고 즐겁게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그러나 공연팀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 옆에 함께 서서 응원을 하는 부모님들이었다. 간간이 음악 소리가 잦아들 때마다 그분들은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아이들을 키우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 자식의 커밍아웃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 어떻게든 아이를 정상(!)으로 돌려보려고 설득하던 때의 갈등,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소수자도 이성애자와 똑같이 정상이고 자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를 응원하러 함께 행사에 나오게 된 사연을 얘기하는 부모님들의 표정은 그날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나는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외치던 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퍼레이드 중간중간 가끔씩 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반대하는 집회 참여자들이 뛰어들었지만, 지방과는 달리 이미 행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서울에서 폭력적인 충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개 행렬 앞에 드러누워서 진행을 막는 시도를 하다가 경찰에 끌려 나가는 정도였다. 길가에서는 간간이 야유와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흥겨운 분위기 속에 별 탈 없이 행진을 즐겼다. 그 속에서 우리도 즐거운 한나절을 보냈다.
후폭풍이 작지는 않았다. 행사에 참여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당장 막말과 욕설로 점철된 댓글들이 올라왔다. 페이스북을 본 기자와 전화로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 기사에도 마찬가지 댓글이 달렸다. 지역구에서도 걱정하는 말들이 있었다. 동료 의원들로부터도 괜찮겠느냐는 걱정을 들었다. 그 정도 반응은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반농담조로 “금 의원은 똘끼가 있어” 하는 얘기도 들었지만, ‘똘똘하다는 뜻일 거야’ 하면서 넘겼다. 소수 진보정당이 아닌 집권여당 소속의 평범한 남성 국회의원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아직까지 성소수자를 적대시하고 차별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난과 막말도 있었지만, 집회에 참가했던 분들로부터 고맙다는 문자도 많이 받았다. 모처럼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내 자식이 성소수자라면?
자 이제 첫머리에 썼던 질문에 답을 해보자. “네 자식이 호모면 좋겠느냐.”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지만, 굳이 답변을 하자면 이렇다. 나는 우리 애들이 모나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어떤 면이든 소수자에 속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 마음은 다 그렇다. 누군들 자식이 힘든 경험을 하기를 바라겠는가. 이왕이면 성소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왼손잡이보다는 오른손잡이였으면 좋겠고, 이왕이면 반항적인 성격보다는 원만하고 두루두루 친한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면을 가진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외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것은 그 사람이 왼손잡이라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그냥 그 사람의 특성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나 차별을 하는 것, 혹은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왼손잡이로 태어난 아이를 때려서라도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일이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때마다 되풀이되는 질문, “후보자는 동성애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라는 질문이 그 자체로 폭력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왼손잡이에 반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유엔에서는 해마다 대한민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유를 하지만 우리는 아직 못 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세건의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그중 두개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때문에 철회해야 했다. 나머지 하나도 본회의에 가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퀴어 퍼레이드에 다녀온 후에 많은 고민을 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선뜻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자칫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다시금 철회하는 사태가 생긴다면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힘든 분들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주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최소한 힘든 분들의 옆에 서는 것을 게을리하지는 말자는 다짐을 한다. 퀴어 퍼레이드에 계시던 부모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다음번 축제에서 만나면, 내 아이가 자랑스러운 것만큼 그분들의 아이들도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오고 싶다. 프라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