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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y 22. 2019

툭하면 고소·고발하는 의원들…“법으로 하는 주먹질”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⑦ 정치인과 고소·고발

여야 의원들 정치적 목적 위해
명예훼손 고소, 무고죄 맞고소
전세계에서 우리가 거의 유일
원래 보수 쪽에서 보이던 행태
언제부터인가 진보 쪽도 이용
악순환 끊어 정치 사법화 막아야


2010년 12월8일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야당 의원들이 새해 예산안 처리를 막으려고 점거한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려고 본회의장 입구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


‘고소장’ 혹은 ‘고발장’이라는 제목이 적힌 봉투를 들고 검찰청 민원실에 나타나서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국회의원.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풍경이 아니다. 의원 개인과 관련된 문제로 고소, 고발을 하기도 하지만 여야가 대립하는 와중에 당직을 맡은 의원이 고소장을 내기도 한다. 주로 상대쪽과 공격적인 논평을 주고받는 원내대변인들이 그 구실을 맡는다. 형사 고소에 이를 정도면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이슈일 터.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고소장을 들고 뉴스에 나오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적(!)’에게 정의의 심판을 안기는 용감한 모습으로 보여서 환호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정치의 모습일까.


일본 검사 “그런 일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이 높아지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국회의원들이 서로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뒤 의사당에서 서로 주먹질을 하는 꼴불견은 사라졌지만 법을 가지고 하는 싸움은 여전하다.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검찰청으로 달려간다. 죄명은 주로 명예훼손.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의원은 상대방이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물론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진실을 알렸을 뿐인데 적반하장 격으로 고소를 했으니 무고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하면서 맞고소를 한다. 양쪽 모두 고소장을 내기 전에 대규모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뒤로도 기회만 있으면 상대방을 공격한다.


국회의원들이 검사나 판사 앞에 몰려가서 어느 쪽 말이 맞는지 가려달라고 읍소하는 모습이 선진적인 정치의 형태일 수는 없다. 의회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나라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라고 유권자들이 대표를 뽑아서 만든 것이 국회인데, 정작 가장 논란이 심한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사법기관에 보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은 어떨까.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를 보자.


지난해 초 도쿄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하루 시간을 내서 일본 검사들을 만났다. 현직 검사로서 최고위 직책을 맡고 있는 법무성 형사국장부터 부장검사, 평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과 연배의 검사들을 만나서 똑같은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일본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명예훼손죄가 있습니다. 무고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아베 신조 총리는 소위 ‘학원스캔들’ 문제로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런 공방이 벌어질 때 정치인들끼리 서로 고소, 고발을 하는 일이 많습니까? 예를 들어 아베 총리는 자신을 공격한 야당 의원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그런 고소를 당한 야당 의원은 아베 총리를 무고죄로 고소해서 검찰이 시비를 가려줘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질문을 받은 일본 검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무릎을 치더니 바로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을 했다. “정치적인 논란을 가지고 검찰이나 경찰에 고소, 고발을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의원들 스스로도 고소장을 내지 않고 설사 고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억지로 고소장을 접수시키면 입건은 되겠지만 제대로 수사를 해주지 않고 처박아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소해봤자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이지요.” 실제로 적용은 거의 되지 않아도 형법전에 명예훼손죄가 있는 일본이 이럴진대 애초에 명예훼손을 처벌하지 않는 대다수 선진국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고소장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의원들이 툭하면 수사기관에 고소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실제로 고소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 사이의 고소 사건은 대체로 세가지 경로를 거친다. 우선 첫번째는 요란하게 장외 말싸움을 벌이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다. 단기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는 선거 때 이런 일이 많다. 이슈가 생기면 일단 고소를 한다. 그 자체가 뉴스가 되기 때문이다. 증거가 부족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형사 고소 자체가 타격이 되기 때문에 상대쪽의 약점이 보이면 일단 고소장을 낸다. 그리고 그 자체로 상대방의 잘못이 인정된 것처럼 공세를 벌인다. 언론에서 “○○○의원 ○○ 문제로 피소”라고 보도를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소를 당한 쪽도 마찬가지.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논란의 진상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잘못이 있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일단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맞고소를 하고 본다. 그리고 맞고소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억울함을 증명해주는 것인 양 반박을 한다.


이런 사건들은 끝까지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 않은 때가 적지 않고 사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선거에서 승패가 결정되면 대개는 서로 합의하에 고소를 취소한다. 대통령 선거 같은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 뒤에는 이렇게 취소되는 고소 사건이 수십건에 이르기도 한다. 형사 절차의 낭비이자 국가기관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 처벌은 되지 않지만 수사기관이 문제 된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는 경우다. 대한민국 검찰은 (때로는 법원마저도) 지나칠 정도로 나서서 정치적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려준다. 특히 집권여당 쪽에서 고소를 하는 경우에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정부 때의 ‘피디(PD)수첩 사건’이다. 국회의원이 고소를 한 사건은 아니지만 쇠고기 협상 담당 공무원이 고소인이 된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보도 내용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친절하게 밝혀줬다. 사법기관이 법률적 판단과 상관없는 사실관계의 당부(옳고 그름)를 일일이 가려주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형사 고소의 유혹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유인이 된다.


세번째는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다. 고소, 고발이 예정하고 있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을 때가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다. 토론을 통해서 양쪽의 입장이 반영되고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검찰이나 법원의 손에 의해서 일도양단적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정치의 사법화’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법원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인데 사법이 이렇게 정치적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다 보면 객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완승을 거두게 되는 형사 사건의 특성상 여야 정치권은 결과를 놓고 재판부나 담당 검사를 비난하게 되고, 그런 일이 거듭되면 사법기관도 부지불식간에 ‘정치적 균형’을 고려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희재의 모욕, 공지영의 대응


원래 형사 절차를 이용해서 정치적인 이슈를 처리하는 것은 주로 보수 쪽에서 보이던 행태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의 경우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위험성 때문에 주저하는 일이 많았다. 수사기관을 통해서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언젠가부터 진보 진영도 보수 못지않게 고소, 고발을 애용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치권 주변에서 명예훼손으로 인한 고소, 고발 혹은 손해배상 청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람 가운데 하나는 변희재씨다. 진보 정치인들은 기회만 있으면 고소장을 들고나오는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했다. 그러던 그가 한번은 트위터에서 작가 공지영씨를 모욕해서 문제가 된 일이 있다. “총선 때 공지영이 투표한다고 자기 생얼 올렸잖아요. 진짜 토할 뻔했어요. 50 먹은 여자가 왜 생얼을 올립니까? 공주병은 확실해 보여요”라고 쓴 것이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모욕죄에 해당해서 처벌을 당하거나 혹은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진보 진영의 많은 인사가 그때 공지영씨에게 고소를 하라고 권유했다. 이번 기회에 변희재씨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변호사를 하고 있던 나에게 고소장을 작성해서 공지영 작가를 도와주라는 요청도 많았다. 내 의견은 달랐다. 툭하면 고소장을 날리는 행태를 비판해왔는데 기회가 왔다고 똑같이 고소를 하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하기 위해서 공지영씨를 만났는데 다행히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가로서, 다른 사람의 표현을 문제 삼아서 형사 고소를 할 뜻은 없다고 했다. 의연한 태도에 존경심이 들었다. 기쁜 나머지 신문에 ‘변희재 고소하지 맙시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인들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고소장을 주고받는다. <노컷뉴스>의 2019년 2월11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이 채 안 되는 동안 여야 정치인들이 고소, 고발을 한 중요 사건이 7건이라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고소, 고발을 남발하다 보니 시민단체들도 주저 없이 형사 고소를 한다. 정치권이 직접 나서기 곤란한 사건을 대신 고발해준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사건 중에는 엄밀히 따지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사법기관에 맡겨서 법에 따라 처리한다면 대화를 통한 타협이라는 정치의 구실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진영 간의 대립이 극심해지고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힘들어진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진보 진영의 구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진보는 토론과 논쟁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말 한마디를 문제 삼아서 법정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진보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권을 잡은 기회에 솔선수범하면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진보 쪽에서 고소, 고발을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하면 결국 보수 쪽도 정치적 문제를 검찰이나 법정으로 들고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문화를 바꿔나가는 것이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20대 국회가 1년 남았다. 그 기간 동안 벌어질 형사 사건에서 우리 쪽이 모두 이기는 것보다 우리가 나서서 갈수록 심해지는 ‘정치의 사법화’를 막아내는 성과를 올리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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