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⑧ 정치인과 언론
많은 의원 자기 기사 검색하는 버릇
정치인은 인지도를 먹고 살기 때문
‘유명인’도 여론조사에서 30% 못 넘어
대선후보 명단 들면 단숨에 80%로
기자 만나 자신 알리려 노력하지만
모든 자리 ‘공적’이라는 점 명심해야
여의도에는 국회의원과 연예인을 비교하는 우스갯소리가 많다. 그중 하나가 둘 다 틈만 나면 네이버나 다음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해본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실제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국회의원은 자기가 나오는 기사를 검색하는 버릇이 있다. 정치인은 인지도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자기 부고(訃告)만 아니면 모든 기사가 반갑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며칠 언론에 등장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토론이나 시사 프로그램 등에 자주 나와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의원은 50명 정도라고들 하는데 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예외가 있다면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늘 뉴스에 등장하는 여야 당대표나 원내대표 정도일 텐데 그분들도 자기가 언론에 어떻게 보이는지 민감하게 신경을 쓴다.
날마다 온라인 뉴스에 뜨지만
검색 결과는 어떨까. 믿지 못하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국회의원들은 거의 매일 기사가 뜬다. 이 글을 쓰면서 한번 확인을 해봤다. 네이버에 ‘금태섭’이라는 이름을 쳐보면 4월13일(토요일) 2개, 4월14일(일) 10개, 4월15일(토) 9개… 이런 식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가 검색된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가 열렸던 4월10일(수)에는 자그마치 105개의 기사가 나왔다. 가장 최근에 내 이름으로 뉴스가 전혀 검색되지 않는 날은 3월26일이다. 자, 한달 가까이 언론을 탔으니 이제 안심해도 될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어도 인지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인터넷에 기사가 검색된다고 해서 신문 지면에 실리거나 혹은 방송에 나온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 언론사 온라인 전담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것들을 실적 삼아 그냥 올리는 경우도 많다. 국회의원 이름으로 검색되는 많은 기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신문 독자나 시청자를 만나지는 못하고, 그저 매일 포털사이트에 자기 이름을 쳐보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될 뿐이다. 일간지에 등장하거나 뉴스 화면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소위 ‘스펙’이 매우 좋고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도 해서 자기 딴에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고 자부하는 정치 지망생이 있다고 치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 미리 염두에 둔 지역구에서 여론조사를 해본다. 표준적인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께서는 ○○단체 대표로 활동하다가 이번 총선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고 하는 금태섭 변호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①알고 호감이 간다. ②알지만 호감이 가지 않는다. ③이름만 들어봤다. ④모른다.” 결과는? 거의 모든 경우에 ④번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90%를 넘는다. 즉 인지도가 10%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주위에서 유명인이라는 얘기를 듣고 가끔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는 경우에도 여론조사에서 인지도가 30% 넘게 나오기는 매우 힘들다. 장관 등 고위직을 지낸 분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역 의원은 조금 다르다. 적어도 자기 지역구에서는 절반 이상의 사람이 안다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역시 지역구를 벗어나면 무명용사에 불과한 국회의원들이 태반이다. 다선 의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3선, 4선을 했는데도, “응? 그런 국회의원이 있었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유권자의 대표인 선량으로서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이 기를 쓰고 대권주자의 반열에 들고 싶어 하는 이유 중에는 이것도 있다. 언론사에서 실시하는 대선 후보 여론조사 명단에 들면 전국적 인지도가 80%를 훌쩍 넘기게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유명하지 않으면 그 명단에 낄 수 없다. 이래저래 뉴스에 등장하고 인지도를 올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간절히 바라는 목표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과 기자의 관계란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하는가? 기자들을 만난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얘기를 한다.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자기 자랑이나 실적을 늘어놓으면서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평판만 나빠지기 십상이다. 언론기관은 광고회사가 아니다. 기자들은 기사로 쓸 가치가 있는 정보나 혹은 취재에 도움이 될 배경지식을 얻고 싶어 한다. 마감에 쫓겨서 바쁜 와중에 정치인들을 만나는 것은 나름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 의원들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자들과의 대화 주제는 주로 정치 현안이나 각 정당의 입장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그런 자리에서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거나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속사정을 설명하다 보면 언론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다음에 기사를 쓸 때 의견을 얘기해달라고 요청하는 전화를 받거나 인터뷰를 하게 될 때도 있다. 기자들도 사람인 이상 특정한 정당을 출입하다 보면 일종의 애정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만나는 기자들은 자유한국당의 논리를 자주 접하게 되고, 더불어민주당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민주당의 주장에 익숙해진다. 이때 상대측의 주장을 무조건 공박하지 않으면서도 논리적으로 모순점을 지적하면 기사로 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스스로의 인지도도 높이면서 소속 정당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기자들을 만나는 것에도 위험이 따른다. 무엇보다 기자들은 대화나 통화를 녹음하는 일이 많다. 이것은 불신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인의 말실수를 트집 잡아서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믿고 있다). 언론사들은 소속 기자들에게 취재 과정을 보고하도록 한다. 국회의원과 나눈 얘기는 중요한 보고 대상이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 녹음을 하는 것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가끔은 전에 어떤 얘기를 했는지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 “○○○기자, 녹음한 거 한번 들어보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얘기를 들은 기자들은 대개 멋쩍게 웃고 만다.
취재 기자로부터 보고를 받은 데스크는 내용에 따라 기사로 쓰도록 지시를 하기도 하고 이른바 ‘정보보고’(언론사에서 내부 공유용으로만 보고하는 것)로 남기기도 한다. 이런 정보보고가 다른 곳에 들어가서 사달이 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2012년 대선 당시 막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은 김재원 의원과 저녁을 먹던 기자들은 김 대변인이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하는 건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정보보고를 했다. 이 보고를 전해 들은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들은 아직 만찬 중이던 김 의원에게 질책하는 전화를 했다. 김재원 의원이 당황한 것은 불문가지. 김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화가 나서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에게 욕설을 했다는 사실까지 다음날 보도가 되었고 결국 대변인직을 사퇴해야 했다. 기자들을 만나는 것이 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정치인과 언론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무리 친하고 허물없이 느껴져도 양자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것이다. 정치인이 문제적 발언을 했으면 기자는 보도할 의무가 있다. 대변인으로 임명된 날 식사를 함께 할 정도면 매우 가까운 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사를 안 쓰거나 윤색한다면 이미 그 관계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을 대할 때는 모든 행동이나 발언이 공개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취재 기자들과 만나는 어떤 자리도 사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공적인 책임이 따른다. 사실 다른 사람을 대변하거나 대표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밝힐 의무가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정당 대변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예전에는 당마다 대변인이 한명 있었다. 당의 입장을 밝힐 창구를 혼자서 전담할 때는 모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내로남불’이라는 불후의 논평을 남긴 박희태 대변인,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가 된 이낙연 대변인 등이 다 그랬다. 언론과 상대하는 대변인이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개를 전제로 판단과 결정이 이루어지면 최소한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매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금은 당마다 대변인이 여러명이 되었다. 민주당의 경우 수석대변인 외에 남녀 대변인이 따로 있고 원내대변인 두명까지 포함하면 다섯명이다. 그 외에 부대변인들도 있다. 다른 당도 대동소이하다. 업무량에 따라 대변인의 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변인들이 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안을 이유로 회의에 대변인을 참석시키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다 보면 자칫 대변인이 당 지도부에서 알리고 싶어 하는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존재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우리 정당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정치인 개인에 있어서나 정당에 있어서나 언론을 상대하는 일은 단순히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공적인 영역인 정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국민들에게 알릴 의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수의 대변인을 두는 것이 알리고 싶지 않은 일들을 감추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자분들, 이해해주지 마세요
정치인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글을 쓰는 기회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기자들에게 편을 들어달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에 우호적이라고 여겨지는 매체에 대해서 “비판에 앞서 먼저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라”는 주문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찬성하기 어렵다.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는 시기다. 그러나 언제나 언론의 본령은 비판이다. 특히 정치는 비판을 받아야 조금씩 나아진다. 기자들마저 편을 들고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 최악의 정치가 출몰할 수도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비판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애국”이라고 말했다. 나는 저 문장에서 ‘애국’ 부분에 어떤 대상을 넣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비판은 한국 정치에 대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애정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애정이야말로 사회가 언론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취재의 대상인 정치인의 입장에서 기자들에게 충고나 부탁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얼굴이 떠오르는 친하고도 존경하는 기자들에게 진심을 담아서, 가차 없는 비판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