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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y 22. 2019

장거리 비행하는 동안 읽기 좋은 책

금태섭의 <금씨책방> 38 - 순수한 인생 외

휴가인 듯 휴가 같은 휴가는 아닌, 그렇다고 업무라고 할 수도 없는 여행을 다니는 동안 읽었던 책 3권 서평.


1. "순수한 인생", 데이나 스피오타 지음, 황가한 옮김, 은행나무



저자 소개에 "천재 작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천재까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매우 잘 쓰는 작가인 것은 분명.


핸드폰이 등장하기 전 유선전화만 있었던 시절에 어딘가에서 얼핏 들었다가 지금은 다 잊어버린 이야기들이 있다. 전화기 버튼을 누르면 '삐'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게 번호마다 톤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1번 번호판을 누를 때 나는 소리와 5번 번호판을 누를 때 나는 소리는 다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전화하는 옆에서 그 소리를 정확히 들으면 어떤 번호에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수화기에 대고 휘파람으로 그 소리를 정확히 흉내 내면 공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도시 전설. 이 소설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단순히 소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선전화와 함께 사라져 버린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다.


소재에 대한 취재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도 매우 뛰어나서 주인공이 늙은 시절의 오손 웰즈를 찾아가서 동거하는 이야기,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등장인물이 어린 시절 엄마와의 대화에서 자기와 엄마의 차이를 깨닫는 장면 등은 그대로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돈 드릴로가 멘토 역할을 했다는데 미국 동부 문예창작과 냄새가 물씬 나는 작가. 2017년 연말에 번역된 책인데 어쩌다 작년이 이 소설을 놓쳤는지 모르겠다. 공항에서 우연히 득템. 좋은 소설이면서도 잘 읽혀서 장거리 비행하는 동안 다 읽을 수 있다. 강추.


2.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희용 옮김, 위즈덤하우스


이건 지난번 출장 갈 때 공항에서 샀다가 이번에 들고 가서 읽은 책. 마거릿 애트우드 매우 애정 하는데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쫌. ㅎㅎ

마지막에 반전이 괜찮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범작인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1939년생이신데 다시 한번 "눈먼 암살자" 같은 책을 써주시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3. "One of us is lying", Karen M. McManus 지음, Penguin


역시 공항에서 산 책. 5명의 고등학생이 수업 후에 남아서 벌을 받고 있다가(학교에 핸드폰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그중 한 명이 갑자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죽는다. 누군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을 준 것인데, 피해자는 학교 내에 각종 가십(누가 누구와 연애하는데 몰래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웠다는 등등의 내용)을 모아서 올리는 앱을 운영하는 친구다. 같이 벌을 받던 친구들을 비롯해서 원한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데 과연 범인은....


단순한 내용이지만 나름 흥미가 있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매우 오랜만에 만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단어가 한 개도 안 나오는 책.ㅋㅋ


Karen M. McManus는 이 책이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McManus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짐이 너무 많아서 다 읽고 호텔에 두고 왔다. 누군가 가져가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마지막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한 곳이라고 하는 포르투의 명소 렐루 서점(조앤 롤랭이 해리포터를 쓸 때 움직이는 계단의 영감을 얻었다는 곳)에서 득템 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The Handmaid's Tale"의 그래픽 노블판. 이것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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