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금씨책방> 39
잘 쓴 스파이 소설 매우 좋아하는데 우연히 여성 스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 두 권을 연속으로 읽었다. 그 서평.
- "Transcription" Kate Atkinson 지음, Doubleday
1940년 런던. 언제든 히틀러가 영국을 침공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시절이지만, 어디나 엉뚱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어서 런던에도 파시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군이 들어오면 환영할 준비를 하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정보도 수집하고 그런 활동을 하는데.
여기서 영국 정보부는 매우 영국적인 대응을 한다. 가짜 SS 친위대 장교를 한 명 등장시켜서 파시즘 동조자들을 관리하는 것. 안가(安家)를 한 채 마련하고 비밀 회합을 가지는데 주로 아줌마(!)들로 구성된 파시즘 동조자들은 힘들게 모아 온 정보(대체로 별 쓸데없는 내용들이다)들을 이 독일 장교(!)에게 털어놓는다.
갓 학교를 졸업한 우리의 주인공은 이 비밀 회합에서 녹음된 대화를 녹취하는 일을 한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가 아닌 만큼 녹음이 엉망이라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곳은 추리력을 발휘해서 메우기도 하고 도저히 안 되는 부분은 공란으로 남기기도 한다. 그 와중에 함께 일하던 상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동료와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하여튼 사회 초년생이 겪을 만한 일들을 겪어 나가는데, 이런 일이라는 늘 그렇듯이 뜻밖의 사태가 생기기 마련이라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당하고 그러면서 깊숙이 감추어진 비밀을 우연히 접하게 되는데......
스파이 소설 치고는 앞부분이 가볍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점점 눈을 떼기 어렵게 된다. "박물관 뒤 풍경", "Life after Life"를 비롯해서 케이트 앳킨슨은 현재 작품을 내는 작가 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분이 아닐까 싶다. 강추.
- "리틀 드러머 걸",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다른 건 몰라도 독해 능력이 남들보다 특별히 떨어진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65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스토리를 정확히 파악을 하기가 어려웠다. ㅠㅠ 번역이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할 수 없이 왓챠 플레이에 가입을 해서 박찬욱 감독이 6부작 드라마로 만든 BBC 제작 드라마를 보고 내용을 깨우쳤다. ㅠㅠ
냉전 이후 스파이 소설 작가들이 소재를 구하느라고 애를 먹었는데(영원한 적 소련이 망했으므로-007 시리즈에 괜히 북한이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르 카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을 소재로 이 책을 쓰게 된 듯.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에 의한 폭발 사건이 터지는 가운데 모사드는 배우 출신인 우리의 주인공(영국인)을 포섭해서 첩보원으로 만들고 팔레스타인 조직에 침투시킨다. 폭발 사건의 행동대장 격인 사람의 애인인 것처럼 위장시키는 과정(실제로는 둘이 얘기를 해본 일도 없다), 평범한 젊은 배우를 스파이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 하지만 스토리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은 BBC 드라마를 먼저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ㅎㅎ 박진감 넘치는 부분을 만나려면 600 페이지를 견뎌내야 한다. 독해능력과 참을성이 뛰어난 분들께 추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