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의 경제학
조직에 몸담은 수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정치가 싫다.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겠다."라고 말이다. 고결해 보이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 조직에서 '실력'이란 개인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협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도덕성이 결여된 권모술수적인 정치가 아닌, '공동체 내 다양한 집단의 의견 충돌을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자원과 권력을 배분하는 모든 활동'이라는 정치의 본래 의미처럼, 사내 정치는 타 부서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고도의 협상력'이자 '영업력'이다.
실제로 조직에서 성과를 내려면 다른 부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스타트업의 대표가 VC를 설득해 자금을 유치하듯, 리더는 의사결정권자와 유관부서 리더를 설득해 예산과 지원을 유치해야 한다. 우리 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전사적으로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증명하지 못하면, 타 부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KPI가 있고 지켜야 할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부탁보다는 전략적 제안이 필요하다.“이것 좀 도와주세요.”라는 읍소는 통하지 않는다. "ㅇㅇ님, 해당 프로젝트를 함께 성공시키면 ㅇㅇ님의 '전사 생산성 향상' KPI 달성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해당 업무에 대한 성과배분 비율을 제안 드립니다.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라는 구체적 제안을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내 정치의 본질인 '이해관계의 조율'이다.
그런데 조직이 커질수록 이런 조율은 더욱 어려워진다.부서 간 장벽인 사일로 효과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일로는 이해관계의 조율을 저해할 뿐만 소통의 단절, 책임떠넘기기 등을 야기시켜 회사의 막대한 비용을 발생하게 한다.
바로 이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된다.리더는 이 사일로를 부수는 망치를 들어야 한다. 우리 팀의 R&R만 고수하는 '부분 최적화'는 전사적인 '전체 최적화'를 방해한다. 내 팀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전사 이익이 더 크다면 양보할 수 있는 결단, 반대로 전사 이익을 위해 타 부서의 영역을 침범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사내 기업가가 가져야 할 '오너십'이다. 내 땅만 지키는 영주가 되지 말고, 영토를 넓히고 연결하는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기반은 무엇인가?직급이 높다고 타 부서가 협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리더의 영향력은 '신뢰 자본'의 총량과 비례한다.
신뢰 자본을 쌓는 방법은 두 가지다.첫째는 약속 이행이다. 내가 뱉은 말과 숫자를 지켰을 때 신용이 생긴다. 둘째는 기여다. 내가 먼저 타 부서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때 부채의식이 생겨 내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현명한 리더는 평소에 타 부서에 '빚'을 만들어둔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빚을 회수하여 우리 팀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결국 이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사내 정치의 순기능이다.개인의 이익이 아닌 조직 전체의 성과를 위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조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경제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