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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Sep 27. 2024

간호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직장 내 괴롭힘

모두에게 정중하되, 누구에게나 쩔쩔매지 말자.

 도로에서 막무가내인 운전자와 한동안 같은 길로 가야 한다면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러니 한 걸음 물러나자. 모두에게 정중하되, 누구에게나 쩔쩔매지 말자.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중에서



 나는 2020년에 간호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병원에 입사했다. 신규 생활은 중환자실에서 시작했다. 내가 일하던 중환자실은 말 그대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나는 그럴수록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나더라도 항상 선배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다녔다.

"넵! 다시 공부해서 다음부터는 잘하겠습니다!"

"넵! 다음번에는 틀리지 않고 하겠습니다!"

"넵! 앞으로는 잘 챙기겠습니다!"


주눅 들지 않기 위해 죄송하다는 말은 안 했다. 그리고 혼나더라도 더 크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파트장님이 갑자기 따로 불렀다.

"김태섭 선생님. 여기로 잠깐 와보세요"

평소에 이름만 부르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성을 다 붙여서 부르고 존댓말도 쓰셨다.

"선생님, 여기 중환자실에서는 그렇게 웃으면서 다니면 안 돼요. 그리고 혼났으면 좀 미안한 행동도 보여야지 그렇게 뛰어다니고 목소리 크게 다니면 사고 난 다고요. 앞으로 좀 조심하세요"


 면담을 마치고 한 껏 풀이 죽어서 나왔다. 주변에서 그런 날 보고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쟤는 몇 달 갈 거 같냐? 나는 한 2달 본다. "

" 쟤 어차피 그만둘 거 같은데? 이제 가르쳐 줄 필요도 없어. "


나는 수군거리는 그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네 말처럼 안될 거라고. 너네가 뭐라고 해도 난 꼭 버틴다.

 출근할 때 사원증을 찍어야 문이 열린다. 각오는 좋았지만 막상 들어갈려니 사원증을 들은 내 손이 덜덜 떨렸다. 항상 그런 내 손을 보면서 가슴이 턱 하고 막혀왔다. 마음속으로 수 십 번은 외치면서 내 마음을 다잡았다. " 좋아 태섭아. 오늘도 할 수 있다! 잘해보자! "  


 그렇게 긴장 속에서 버티다 보니 6개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다 보니 긴장하면서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환자들에게도 실수하지 않고 최선의 간호를 할 수 있었다. 나도 주사에 찔리거나,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선배들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 많이 알려줬다. 그때 알았다. 왜 웃지 말고 긴장하면서 일하라고 했는지. 거기 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몰아붙이고 태우는 사람은 계속 존재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간호사 문화중에는 '태움'이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멘탈을 '활활 태우는' 거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일할 때만큼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태움을 당하다 보면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란다. 일하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집에 가서도 불에 탄 자국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런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다가 버티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2023년 병원 간호사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간호사 1년 이내 퇴사율이 10명 중 6명이다.


간호사 10명 중 6명, 취업 1년 못 채우고 퇴사…“업무 많고 적응 힘들어” - 조선비즈 (chosun.com)

* 사직 이유로는 업무 과다와 부적응이 40.2%로 가장 많았다. 병원 간호사 사회에서는 선임 간호사의 신참간호사 ‘태움(교육을 명목으로 후배를 괴롭히는 행동들)’ 논란이 있어 왔다.



 '태움'은 분명 잘못된 게 맞다.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본인이 돈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행동할까. 지는 얼마나 잘난 사람이길래.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되면 안 된다. 특히 '인신공격', '놀림', '폭력'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나는 1년 동안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살았다. 물론 5년 차인 지금도 아직 혼날 때가 있다. 그런데 단지 '일'을 잘못해서 혼나는 거랑 그냥 '괴롭힘'을 당하는 거랑은 다르다. 지금까지 태움을 당해온 나도 단지 '일'에 대한 잘못된 행동을 뭐라고 하는 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병원은 정말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긴장해야 할 때 설렁설렁 일한다면 환자에게 위험이 갈 수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나에게 다가 올 위험들도 정말 많다. 주사 찔림, 병균접촉, 감염, 약, 폭력 등 긴장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친다.


 간호사 5년 차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태움'이 아닌 '잘못된 일'에 대해서 혼난 덕분에 스스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계속 실실 웃고만 다녔으면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환자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큰 위험으로 다가왔을거다. 하지만 단순히 일이 아닌 다른 걸로 괴롭히는 사람들은 진짜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들이다. 본인은 일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건 '태움'이다. 어느 누구도 사소한 직책으로 그런 한 짓을 할 수는 없다. 그곳에서는 대단한 사람으로 행동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작은 집단에 작은 지배자일 뿐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실수한다. 지적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 신도 우리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고쳐 나갈 뿐이다. 본인은 아무리 '태움'으로 컸다고 해도 잘못된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공간이니 '태움'이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간호사의 딜레마다. 하지만 '인신공격', '놀림', '폭력'. '따돌림'은 정당화될 수 없다. 단지 잘못된 '일'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는 좋은 방법들이 직장 문화로 정착되면 좋겠다.



 혹시 지금 직장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나? 혼자 힘들어하지 마라. 사실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밖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도 자기랑 놀아주지 않아서 그렇다. 사소한 직책을 가지고 괴롭힘으로써 당신의 관심을 요구하는 거다. 인류애를 발휘해서 마음속으로 동정 어린 시선을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면 더 이상 참지 마라. 힘들면 신고하자.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는 거다.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소중한 존재다. 괴롭히는 인간들 밤길 조심해!


*고용 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상담 센터 (1522-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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