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어쩌면 내가 빌런 일수도?
"남에게 충고하는 일은 쉬운 일이며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 쉽다는 말은 남의 허물은 잘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남의 단점을 너무도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단점은 안 보인다. 애초에 인간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남의 잘못을 더 잘 본다. 그렇다면 남의 허물을 내 거울로 삼으면 된다.
- "고전이 답했다" 중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빌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빌런은 바로 '부정적인' 사람들이다.
가장 경력이 높은 A는 멀쩡한 키보드로 샷건을 친다. 일하다 보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을 못하겠다. 당장 바쁘지도 않고, 누가 화나게 만든 것도 아닌데 키보드 샷건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습관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다 보면 바로 밑에 있는 B도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 거기 중증 환자 구역 안에 자리 있어요?! " 30m 거리 밖에서도 B의 목소리가 들린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도 다 들린다. 이미 커져버린 목소리는 응급실에 이제 막 들어온 환자에게도 이어진다. "환자분!! 여기 뒤편에 일반 진료구역에 잠깐 앉아 있으세요!!" 그 환자에게 다가가면 나에게 하소연하듯 말한다. "아니 아까 전에 큰 소리로 말하던 그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환자는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 그리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냐며 제발 아까 소리 지른 선생님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한다. 나는 " 저 선생님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바빠서 그래요. 한 번만 이해해 주세요 " 라며 양해를 구한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응급실의 바쁜 분위기가 진정되고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눈치만 보고 있던 막내 C가 "어휴우" 라며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크게 쉰다. 되살아 난 분위기가 또다시 부정적으로 가라앉는다.
환자에게 밝은 분위기로 다가가고 싶지만 나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일하다 보면 의욕이 사라진다. 자연스럽게 기분도 안 좋아진다. 그들은 혼자서 키보드 쎄게 치고, 혼자서 큰 소리로 말하고, 혼자서 한숨 쉬었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있던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이송기사, 간호조무사, 청소미화여사님 등 응급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는 까닭은 자신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을 통해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고전이 답했다” 중에서
사실 나에게도 '부정적인' 모습이 있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행동을 예민하게 알아챘을 수도 있다. 지금은 내가 "키보드 샷건, 큰 소리, 한숨 쉬는 행동"을 안 하더라도, 혹시나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응? 내가 싫다고 한 행동을 나 자신도 하고 있잖아?' 라며 화들짝 놀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키보드를 쎄게 친적이 있다. 아하 나 역시 누군가에게 빌런이었구나!)
최근에 친구들이랑 고기 약속을 잡았다. 평소에 나는 약속 시간에 늦는 걸 싫어한다. (특히 소고기 약속에 늦는 건 굉장히 싫어한다. 먼저 먹고 있으면 늦은 주제에 화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자주 늦는 친구들에게 약속 시간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약속 당일, 나는 시간이 좀 남아서 알람을 맞춰두고 잠깐 낮잠에 들었다. 알람은 분명 울리지 않았는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약속 시간까지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알람이 오전 시간으로 맞춰졌다) 헝클어진 머리로 집을 나가 맹렬한 속도로 고깃집을 향해 뛰어갔다. 헉헉 대면서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모두 도착한 상태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이 자식 이번에 1분이라도 늦었으면 엄청 욕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맞춰서 오긴 했네. 다음번에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
그때 한 번 더 생각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인데.. 나 역시 약속시간을 잘 맞추는 게 쉽지 않구나. 그것도 소고기 약속에 늦을 뻔하다니!' 역시 상대방의 나쁜 점이 보였던 건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누구에게 충고하기 전에 거울을 보듯 나에게도 충고해야겠다.
누구든 직장에서 본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빌런이 있을 거다. 빌런들에게 잘못된 점을 충고할 수 있다. (입 밖으로든, 속으로든)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행동을 똑같이 충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 행동을 무의식 중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제 키보드로 샷건 치지 마세요"라고 A에게 말했다면, 조용히 속으로 '태섭아, 너도 키보드 쓸 때 조용하게 사용해'라고 이야기하자. "친구야 약속에는 시간 좀 지켜"라고 말했다면, 조용히 속으로 '태섭아, 너도 약속 시간에 늦지 마. 특히 소고기 약속이라면 꼭 지켜!'라며 바로 나에게도 충고하자.
우리 모두 남을 통해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 상대의 안 좋은 점을 막무가내로 욕 하기보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에이 내가 그런 점이 있으면 남을 왜 욕해. 무조건 100% 그 사람들 잘못이야"라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100%는 없다. (100% 꽝 없는 당첨 게임 제외) 내가 지금 당장 그런 행동을 안 한다고 해도 나 또한 언젠가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항상 겸손하게 상대의 나쁜 점을 거울삼아 본인에게도 이야기해 보는 습관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착한 역할만 있는 건 시시하고 재미없다. 예를 들어 영화 '범죄도시'에 착한 형사들만 나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영화 상영 자체가 어려웠을 거다. 형사들과 치고박는 나쁜 역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재미있게 시리즈를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도시 1-4 모두 1,000만 관객을 넘겼다)
내 인생도 주위에 착한 사람들만 있다면 너무 행복하고 좋을 거다. 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고, 나 스스로 빌런이 되어도 모를 것 같다. 왜냐하면 빌런을 통해 나를 돌아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직장에도 적당히 빌런들이 있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고전이 답했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