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없는 세상은 왜 어려울까
똥! 이라는 말만 들어도 꺄르륵 웃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똥 밞았네, 기분 똥이네, 니 똥 굵다, 똥 마렵다, 똥구빵구, 길구봉구(?),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똥파리, 개똥망, 피똥, 술똥, 새똥, 소똥, 강아지똥, 똥방귀 뿡
똥! 유치하지만 왜 이렇게 웃기지 이거. 나는 똥과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든 웃을 수 있었다. 깔깔.
물론
간호사 일을 하기 전까지는..
응아는 사람이나 동물이 먹은 음식물을 소화하여 항문으로 내보내는 찌꺼기다. 그 찌꺼기는 대부분 더럽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더럽다고 몸 안에 꽁꽁 숨겨둘 수는 없다. 옛말에 잘 먹고 잘 싸는 게 행복이라는 건 100% 맞는 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응아를 못 싸면 죽는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죽은 사람도 있다.
https://youtu.be/yLdpzmozkuc?si=9_jH3k7Op85dy6uc
* 13년 동안 배변 생활을 못해서 죽음
변비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이 있다. 평소 변비가 심한 분들이나,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주로 온다. 나도 어릴 적 맹장인 줄 알고 배를 움켜잡고 덜덜 떨면서 응급실로 갔는데 엑스레이를 보니 뱃속에 변이 한가득 찬 거였다. (그 이후로 변비에 집착이 생김)
변비 예방법은 간단하다. 물을 많이 먹고, 걷기를 잘하면 된다. 그럼 장 운동이 촉진되면서 변이 시~~~ 원하게 잘 나온다. 반대로 평소에 물을 잘 안 먹거나,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환자라면 장 운동이 안되니 변비가 온다. 변이 몸 밖으로 안 나오고 쌓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딱딱하고 무시무시한 돌처럼 굳는다.
몸속에 돌이라니 얼른 빼줘야 한다. 그럼 병원에서는 어떻게 뺄까? 수술을 해서 빼야 할까? 물론 최후의 수단은 수술이 맞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시도해 보는 게 있다.
바로 에네마(enema)라고 하는 관장!
관장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변비 때문에 하는 관장에는 대표적으로 3가지가 있다.
1. 둘코락스 관장 : 저 작은 알약 같은걸 항문으로 넣는다. 20분 안에 시~~ 원하게 작용한다.
2. 글리세린 관장 : 글리세린이라는 시럽 같은걸 항문으로 넣는다. 20분 안에 시~~~ 원하게 작용한다.
3. 마지막 내 손가락 : ... 내 소..손가락을 항문으로 넣는다. 기다릴 필요도 없다. 넣는 즉 시~~~~~~~~원하게 작용한다!!!!!
대부분 1,2번을 먼저 시도한다. 하지만 효과가 없으면 뱃속에서 이미 변이 돌처럼 굳었다는 뜻이다. (환자도 슬프고 나도 슬프다) 뱃속에 돌이 한가득 들어있으면 되겠나. 물리적으로 당장 빼줘야 한다. 3번 손가락으로 하는 관장은 바로 '핑거에네마'라고 한다. 응급실에서 교수님이 엄청 해맑은 표정으로 날 부를 때가 있다. 갑자기 해맑아지신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나는 그 뜻을 이미 알았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으로 간다.
"교수님 혹시.. 그건가요?"
"응ㅎㅎ그래 맞아. 꼼꼼히 무장 잘하고! 시~~~ 원하게 잘 해결하고 오게나!"
뱃속에서 돌이 된 변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단단해서 깨지지 않는게 강력하다는 말이 아니라 냄새가 조오오오오온나 강력하다. 그놈이 돌이 되기 위해서는 영겁의 세월 동안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였기 때문에 냄새 또한 농축에 농축이 되어있다. 그래서 핑거에네마를 하기 전 완전 무장은 필수다.
일단 장갑은 무조건 5겹을 낀다. 처음에 2 겹 끼고 하다가 잠깐 방심한 사이 뚫려 버린 적이 있었다.
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었다.
마스크는 kf 94 + N95를 한 번에 낀다. 처음에 마스크 안끼고 했는데 돌이 나오자마자 현기증이 왔다.
내 코를 자르고 싶었다. 물론 저렇게 해도 강력한 돌 덩어리들의 향기는 딱 30초 정도만 막을 수 있다. 사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쓴다는게 더 맞는 말이다.
완전 무장이 끝나면 환자에게 가서 '핑거에네마'를 시작한다. 처음에 하려고 마음먹을 때가 어렵지, 막상 환자에게 가면 모든 걸 다 찾아 시~~~~~~~~~~~~원 해지도록 뱃속에 돌 덩어리들을 최선을 다해서 없애드린다.
땅을 팔 때 돌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내려가는 것처럼 '핑거에네마'를 할 때도 해부학적 위치들을 고려해서 파야한다. 일반인이 집에서 하면 절대 안된다. 손가락 끝에 젤을 묻히고 들어간다음 내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코 감각만 빼고) 그리고 돌이 된 그것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간다.
그렇게 하나둘씩 돌을 파내다 보면 환자 분들의 표정도 점점 맑아진다. 백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듯 시~~~~ 원하게 해결해 드린다. 게임에서 퀘스트를 해결하면 보상을 주듯 핑거에네마의 끝에도 보상이 있다!
보상은 바로 환자들의 편안한 표정과 그걸 보고 느끼는 뿌듯함. (깔깔. 간호사 다 됐습니다)
* 오늘도 걷기 운동 많이 하시고, 변비에 좋은 음식 많이 드시고 모두 쾌변 하세요~
* 우리 모두 돌 되기 전에 해결해요. 아니면 저랑 응급실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