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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Sep 03. 2024

병원에서 ‘환타'를 싫어하는 이유

내가 ‘환타’가 되면 왜 어려울까

환타 : 병원에서 환자를 타는 사람, 담당하는 환자의 상태가 이유 없이 안 좋아지는 사람

 

 환타 오렌지, 환타 파인애플, 환타 포도 난 음료수 중에 환타를 가장 좋아했다. 적당한 탄산감에, 적당한 달달함에, 적당한 가격에. 고깃집이나 음식점에서만 시켜 먹던 게 아니다. 진짜 코카콜라보다 좋아해서 집 냉장고에는 항상 환타가 있었다. 나는 물 먹듯이 매일 환타를 먹었다.  


 

 2020년 대학병원에 입사를 하고 중환자실로 발령받았다. 입사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다른 선생님을 엄마라 생각하며 옆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여자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얼마나 졸졸 따라다녔으면 선생님이 화장실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혼났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독립을 한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나 혼자서 환자를 봐야 한다.


 갓 독립을 했던 어느 날 좋아하던 아니 이제는 좋아했던 환타를 먹고 출근했다. 그날 내가 담당하는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다. 무슨 정신으로 일한 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가 순간삭제 당했다. 하지만 삭제되는 날이 3일 연속으로 펼쳐졌다. 왜냐하면 3일 내내 내가 담당한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 같았다. 특히 자책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아직 일을 너무 못하니까 환자를 잘못 봐서 그런 게 아닐까?'


 출근할 때 중환자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 있는 보안패드에 사원증을 찍어야 문이 열린다. 다음날 출근하려고 사원증을 들었는데 거기에 있는 내 얼굴이 흔들렸다. 자세히 보니 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기 너무 무서웠다.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서있었다. 부서에서 출근 안 하냐고 전화 올 때까지 나는 계속 서있었다.


 내가 남들보다 눈이 좀 크다. 그래서 표정에서 티가 더 났다보다. 파트장님이 출근한 나를 보고 바로 면담하자고 했다. "며칠 동안 너무 힘들었지? 네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물론 독립한 지 얼마 안 됐고, 업무가 아직 손에 안 익어서 못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여기 환자들 원래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힘내서 일해도 누구나 심정지가 날 수 있어. 그래서 여기가 중환자실이라는 거야. 네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너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솔직히 떨리던 사원증을 보며 당장 내일부터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파트장님의 좋은 이야기 덕분에 계속 출근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가장 좋아했던 ‘환타’가 되었다. 


(환타 : 환자 타는 사람, 담당하는 환자의 상태가 별다른 이유 없이 안 좋아지는 사람)



 내가 있던 중환자실은 한 근무당 (데이, 이브, 나이트) 5명의 간호사가 일을 한다. 보통 1명당 3명의 환자를 보게 된다. (중환자실이 아닌 병동에서는 간호사 1명당 평균 10명 가까이 되는 환자를 본다) 그래서 비교적 3명밖에 안보는 중환자실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의 강도는 절대 약하지 않다. 그만큼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하다가 한 명의 환자가 심정지가 나면 거기에 있는 모든 인력이 달라붙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보는 정도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날 함께 일하는 멤버가 중요하다. 


당장 내가 힘들지 않으려면 ‘환타’는 놀림감이자 기피대상 1호가 될 수밖에 없다.


  3교대 근무를 하기에 매달 20일쯤 다음 달 근무표가 나온다. 근무표가 공개되면 다들 자기 이름에 체크를 한다. 그런데 공식적인 ‘환타’가 되면 내가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누군가 내 이름에 체크를 해놨다. "태섭이 어딨어. 내 이름보다 태섭이 먼저 체크해 놔야지" 나는 옆에서 머리를 긁적 거리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표정과 달리 속 마음은 누구보다 따갑다. 환타를 먹으면 속에서 톡톡 쏘는 것처럼.


 

 몇 달 후 정기적으로 하는 파트장님 면담시간이 되었다. 신규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의 목표를 이야기하라고 했다. 다른 동기들은 오랫동안 다닐 수 있도록 체력 키우기, 업무 빨리 익숙해지기, 오프 때 재미있는 취미 갖기를 이야기했다.


"태섭아 너는 앞으로 간호사 하면서 목표가 뭐니?"

"네. 저는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체력 키우기를 말하려다가 면담 직전에 ‘환타’라고 놀리고 간 선생님이 생각났다. 다른 목표는 사치였다. 처음 들어 본 대답이 나왔는지 파트장님이 엄청 웃었다. "아니야 태섭아 너랑 다 일하고 싶어 해!" 간호사 전체 인계를 할 때도 "태섭이 목표는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가 되는 거래! 다들 태섭이랑 같이 일할 때 좋지?" 라며 나를 두 번 죽이셨다.


파트장님.. 저 할 말이 있는데요..

마이 드셨습니다.. 고마 해주세요.. 


 

 몇 년 후 내가 좋아했던 환타는 이제 냉장고에서 사라졌다. 특히 출근 전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느끼듯 의도적으로 피한다. 환타를 멀리한 채 일하다 보니 어느새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고맙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환자를 탔던’ 덕분에 아직까지도 간호사를 하고 있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을 보는 게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구보다 일이 빨리 늘었다. 점점 환자를 보는 게 익숙해졌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갖고 단단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헬스 할 때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무게도 늘고 근육도 커진다. 돌이켜보면 ‘환자를 타던’ 순간도 똑같다. 내 능력을 커지게 만들어 준 고마운 순간이다. 이제는 어렵거나 안 좋은 환자가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 운이 좋아진 건지 내공이 쌓여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난 이제 ‘환타’가 아니다.


병원에서 '환타' 주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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