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오는 범죄자가 왜 어려울까
“선생님. 저기에 있는 제 가방에 5만 원짜리 현금 많거든요? 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저기에 있는 거 다 드릴게요.” -본문 중에서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먼저 접수를 하고 초진을 본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아 네. 그럼 먼저 피검사랑 영상검사를 해보고 결과가 나오면 말씀드릴게요”
피검사와 영상검사를 하면 병원에서 무조건 돈 벌기 위해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다. 물론 환자가 원치 않으면 의료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응급실은 환자의 병을 진단하게 되는 첫 번째 공간이다. 증상으로만 병을 진단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증상이라도 다양한 병이 발견된다.
보통 ‘배가 아파요’라는 증상으로 응급실에 가장 많이 온다. 환자가 만약 “화장실에 갔다가 힘을 줘도 잘 안 나왔어요”라고 이야기하면 검사를 하지 않았을 때는 단순한 ‘변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사해 보면 배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뱃속 대동맥이 박리된 경우일 수도 있다. ‘대동맥 박리’는 잠깐이라도 지체하면 사망까지 이어지는 초응급 상황이다. 그래서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아무리 간단한 증상이라도 기본적으로 피검사와 영상검사 그리고 수액치료를 권유하게 된다.
어느 날 수상한 남자가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손에 수갑을 차고 형사 3명이랑 함께 왔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는데, 마약 총책이라고 했다. 초진을 보고 피검사와 수액치료를 권유했다. 하지만 형사들은 간단한 약 처방만 원했다.
"지금 조사 중이라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피검사랑 수액치료가 굳이 필요합니까?"
솔직히 나도 험악하게 생긴 인상과 온몸에 문신을 하고 온 남자에게 약 만주고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로 병원을 왔고, 배를 움켜잡고 힘들어해서 검사가 필요 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피검사와 수액치료를 위해 침대 자리로 안내되었다. 형사는 그 남자의 양손을 침대 난간에 수갑으로 채웠다. 검사와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주사로 혈관을 확보해야 했다. 여자 선생님들이 다가가기엔 덩치도 컸고, 혹시나 우습게 보고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가 하겠다고 했다.
나름 용기 있게 나섰지만 사실은 나도 무서웠다. 차가운 수갑이 채워진 남자의 팔을 위로 걷었다. 혈관을 찾기 위해 지혈대를 묶었다. 혈관이 잘 안보였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양팔에 문신이 가득해서 혈관이 그림 안에 다 가려졌다. 심지어 이미 바늘에 찔린 자국들도 많았다.
"환자분 팔에 혈관이 잘 안 보이네요. 좀 찾아봐야 해서 피부 좀 두드릴게요" 그 순간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커튼 좀 치고 해 주시면 안 돼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부담스럽다며 침대 옆에 있는 커튼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양손에 수갑을 찼고, 주변에 형사까지 있으니 이목이 집중되긴 했다. 침대 발치에서 보고 있던 형사들에게 이야기하고 잠깐 커튼을 쳤다.
남자의 피부를 두드리다 보니 용 문신 비늘 사이로 혈관이 '띠용'하고 살짝 튀어나왔다. 이제 주사를 놓아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문득 '단 둘이 있는 커튼 안에서 주사를 실패하면 나를 위협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주사를 잡고 있던 내 손이 떨렸다. 손이 더 떨리기 전에 과감하게 그 부분으로 주사 바늘을 넣었다. 바늘 끝으로 피가 맺혔고, 수액을 성공적으로 연결했다. 내심 누르고 있던 무서웠던 마음은 수액 연결과 함께 안도의 한숨으로 나왔다.
그러자 환자가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기에 있는 제 가방에 5만 원짜리 현금 많거든요? 저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저기에 있는 거 다 드릴게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했다. 문신도 있고, 마약범이라 해서 무서웠는데 고작 하는 말이 회유였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내 입가에는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저기 가방 안에 얼마 있는데요?”
“저기 안에 천만 원 있어요. 지금 열어보시고 선생님 다 가지셔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가 커튼을 활짝 열었다. “환자분 주사 다 놓았습니다. 근데 형사님 환자가 저 가방 안에 천만 원 있다고 저거 갖고 도망치는데 도와달라고 하네요.”
인상 좋았던 형사들의 눈빛은 180도 바뀌었다. 한 명이 가방 안을 뒤져보니 정말 5만 원짜리가 다발로 들어있었다. “너 선생님한테 정말 그렇게 말했어? 이게 죽을라고. 어디서 도망치려는 생각하고 있어. 이게 무슨 영화인 줄 알아? 김 형사 저기 반대편 손 수갑 꽉 더 조여!” 그렇게 형사들에게 말하고 나는 다른 할 일을 하러 갔다. 중간중간 수상한 남자가 날 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내 일을 묵묵하게 해나갔다.
응급실에 있다 보면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색다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특히 형사들과 함께 들어오는 사람을 볼 때마다 영화 같아서 신기할 때도,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서울 때도 있다. 이런 마음들을 내심 표현하지 않고 일하다 보면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또 나름 재미있는 경험들로 이야깃거리도 생긴다. 덕분에 이렇게 글로도 적어본다. 무서운 경험도 좋은 헤프닝으로 바뀐다니 이거 완전 럭키비키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