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랑 이야기하는 게 왜 어려울까
여자친구가 배우 '차은우'가 웃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아니 두 여자 모두 나만 보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질투가 났다. 차은우가 평소 잘생겼다는 건 알지만 내 여자들까지 빼앗아가다니 용납이 안 됐다. 도대체 얼마나 잘 생긴 거야! 유튜브 들어가서 ‘차’를 치자마자 ‘차은우 실물 반응’이 나왔다. 실물 반응을 보고 나는 바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남자인 내가 봐도 기분 좋아졌다. 내 평생 남자를 보고 기분 좋게 웃을 줄은 몰랐다. 한국에서만 잘 통하는 외모인 줄 알았는데 외국인들도 그의 얼굴을 보면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이미 전 세계를 가진 남자다. 참 부럽다. 다음생에 태어난다면 '차은우'님으로 한 번쯤 태어나보고 싶다. 제발.
저도 처음 봤어요.
아쉽게도 이번생에는 이미 태어난 대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만 보고 쉽게 미소가 지어지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우리는 살면서 기분 좋고 행복할 때만 미소가 쉽게 지어진다. 게다가 다툼, 논쟁, 고민, 걱정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의 미소는 훅 하고 사라진다. 특히 많은 돈이 걸려있는 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미소가 없는 채로 이야기하면 얼굴은 더욱 굳어진다. 결국 상대방과 내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다툴 수 있는 확률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이쁘게 해서 상대방의 미소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리학 책, 인간관계 책, 공감에 대한 책을 10 권 정도 읽고 좋았던 책은 재독 했다. 난 본능적으로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 이 정도는 노력해야 했다. 그 잘생긴 분은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만약 읽으신다면 잘생긴 사람이 운동하는 것처럼 반칙이다. 이번에 운동도 열심히 하시던데 삑! 반칙입니다. 그만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작년에 살고 있던 집의 전세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 계약 만료는 4달의 기간이 남아있었다. 마침 새로운 곳으로 곧 이사를 가야 해서 타이밍이 좋았다. 부동산에서 계약 만기 전에 나가려면 무조건 중개수수료를 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과 나 반반 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나 혼자 내야 한다고 했다. 계약 만기를 기다리기엔 이미 이사 갈 곳의 날짜가 정해진 상태였다. 나는 고작 몇 달의 남은 기간 때문에 중개수수료를 주기가 싫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집주인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기로 했다. 카톡을 쓰기 전에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먼저 말했다.
‘나는 누가 봐도 말이 이쁜 남자다. 나는 말을 이쁘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내 카톡은 차은우 얼굴이다. 집주인에게 배운 걸 시도해 보자. 호감을 얻어서 중개비를 주지말자'
얼마 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온 듯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용?”
“답이 늦었습니다. 제가 오늘 부산 다녀오고 했네요. 먼저 결혼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 조금 더 사셔도 좋은데 아무래도 두 분 이서 지내시기에는 좁으시겠죠? 제가 바빠서 관리가 부족했지만 만족하면서 사셨다니 오히려 고맙네요.”
“아 아니에요. 항상 불편한 점 있으면 먼저 챙겨주셨잖아요. 이 집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얻었어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럼 먼저 집을 내놔야 할 것 같은데 수고스럽지만 지난번 중개했던 부동산에 말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네 그럼요. 거기 포함해서 집 주변 몇 군데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최근 신혼집 알아본다고 주변 부동산에 자주 들렸는데 다른 사장님들도 선생님을 참 좋아하셨어요. 혹시 전세 금액은 이전하고 같은 금액으로 하실까요?"
"네 같은 금액으로 하지요."
"네 알겠습니다. 주변 전세가격이 비싸던데 같은 금액이라면 아마 위치도 좋고 깔끔해서 금방 나갈 것 같아요."
“네 그럼 다행이죠. 경사로 나가시는 거니 중개비는 제가 부담한다고 부동산에 말해주세요. 수고스럽지만 부탁드립니다. “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결론은 집주인이 중개수수료를 내기로 했고, 그동안 변변치 못 한 집에서 살아줘서 다시 한번 고맙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중개수수료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 정말 마음에 든다는 말부터 꺼냈다. 현재 살고 있는 집과 평소 집주인의 행동을 진심으로 칭찬했다. 평소 결혼 때문에 집을 알아보며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들었던 집주인의 평판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그리고 몇 년도 있고 싶지만, 결혼 때문에 집을 급하게 뺄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집주인은 이때까지 어떤 임차인(세입자)에게도 그런 말은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전화 목소리에서도 그런 반응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보였다.
얼마 후 새로운 임차인(세입자)을 구해서 계약했다는 연락이 왔다. 덕분에 나도 기분 좋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나갔다. 이사 후 서로 좋은 인연으로 남기고 싶어 전 집주인에게 카톡을 했다.
집주인은 평소에 얼굴을 보거나 연락을 자주 하기는 힘든 사이다. 보통 연락을 하더라도 집에 대해서 불편한 점만 이야기하지 서로 좋은 말을 하기에는 어려운 관계다. 실제로 최근에 전세사기도 많고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세입자)이 얼굴 붉힐일이 꽤나 많이 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집주인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 운도 본인이 만들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물론 모든 임대차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선 그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방법으로 문을 열면 아무리 딱딱하고 어려운 집주인이라도 부드러워질 수 있다. 결국 이 방법으로 50만 원 정도 하는 중개수수료를 아끼고 양측 모두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임대차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명한 우화인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있다. 해와 바람은 누가 더 강한지를 놓고 논쟁을 했다. 바람이 말했다. “내가 더 세다는 걸 보여줄게. 저기 코트를 입고 있는 노인이 보이지? 너보다 더 빨리 그의 코트를 벗기는 걸로 내기를 하지” 그래서 해는 구름 뒤로 숨었다. 바람은 세차게 입김을 불어 댔다. 마치 태풍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세게 입김을 불어 대면 댈수록 노인은 코트를 꽁꽁 동여맸다. 결국 바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잔잔해졌다. 그다음에는 해가 구름 뒤에서 나왔다. 해는 친근하게 노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 ‘차은우’님처럼 밝은 미소였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코트를 벗었다. 해의 부드러움과 친절은 분노와 힘보다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