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환타’가 되면 왜 어려울까
환타 : 병원에서 환자를 타는 사람, 담당하는 환자의 상태가 이유 없이 안 좋아지는 사람
환타 오렌지, 환타 파인애플, 환타 포도 난 음료수 중에 환타를 가장 좋아했다. 적당한 탄산감에, 적당한 달달함에, 적당한 가격에. 고깃집이나 음식점에서만 시켜 먹던 게 아니다. 진짜 코카콜라보다 좋아해서 집 냉장고에는 항상 환타가 있었다. 나는 물 먹듯이 매일 환타를 먹었다.
2020년 대학병원에 입사를 하고 중환자실로 발령받았다. 입사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프리셉터 선생님을 엄마라 생각하며 옆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여자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얼마나 졸졸 따라다녔으면 선생님이 화장실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혼났다) 그렇게 배우다가 한 달이 지나면 독립을 한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나 혼자서 환자를 봐야 했다.
갓 독립을 했던 어느 날 좋아하던 아니 이제는 좋아했던 환타를 먹고 출근했다. 그날은 내가 담당하는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다. 무슨 정신으로 일한 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가 순간삭제 당했다. 삭제되는 날이 3일 연속으로 이어졌다. 왜냐하면 3일 내내 내가 담당한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기 때문이다. 끔찍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더 크게 무너졌다. 특히 자책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아직 일을 너무 못하니까 환자를 잘못 봐서 그런 게 아닐까?'
출근할 때 중환자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 있는 보안패드에 사원증을 찍어야 문이 열린다. 다음날 출근하려고 사원증을 들었는데 거기에 있는 내 얼굴이 흔들렸다. 손이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기 너무 두려웠다. 너무 무서웠다.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부서에서 출근 안 하냐고 전화 올 때까지 나는 계속 서있었다.
내가 남들보다 눈이 좀 크다.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났나 보다. 파트장님이 출근한 나를 보고 바로 면담하자고 했다. "며칠 동안 너무 힘들었지? 네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물론 독립한 지 얼마 안 됐고, 업무가 아직 손에 안 익어서 못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여기 환자들 원래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도 누구나 심정지가 날 수 있어. 그래서 여기가 중환자실이라는 거야. 네가 못해서 그런 게 절대 아니야"
너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솔직히 떨리던 사원증을 보며 당장 내일부터 그만두려고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도 파트장님의 이야기 덕분에 계속 출근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환타’가 되었다.
(환타 : 환자 타는 사람, 담당하는 환자의 상태가 별다른 이유 없이 안 좋아지는 사람)
내가 있던 중환자실은 한 근무당 (데이, 이브, 나이트 삼 교대 근무) 5명의 간호사가 일을 한다. 간호사 한 명이 3명의 환자를 보게 된다. 중환자실이 아닌 병동에서는 간호사 한 명이 평균 10명의 환자를 본다. 비교적 3명밖에 안보는 중환자실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의 강도는 절대 약하지 않다. 그만큼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명의 환자가 심정지가 나면 거기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달라붙는다. 그렇게 되면 간호사 한 명이 환자 4명을 보는 정도로 일을 해야한다. 따라서 중환자실은 함께 일하는 멤버가 중요하다.
당장 내가 힘들지 않으려면 ‘환타’는 놀림감이자 기피대상 1호가 될 수밖에 없다.
삼 교대 근무를 하기에 매달 20일쯤 다음 달 근무표가 나온다. 근무표가 공개되면 다들 자기 이름에 체크를 한다. 그런데 부서의 공식적인 ‘환타’가 되면 내가 체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누군가 내 이름에 체크를 다해놨다. "태섭이 어딨어. 내 이름보다 태섭이 먼저 체크해 놔야지" 나는 옆에서 머리를 긁적 거리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표정과 달리 속 마음은 누구보다 따갑다. 환타를 먹으면 속에서 톡톡 쏘는 것처럼.
몇 달 후 정기적으로 하는 파트장 면담시간이 되었다. 신규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의 목표를 이야기하라고 했다. 다른 동기들은 오랫동안 다닐 수 있도록 체력 키우기, 업무 빨리 익숙해지기, 오프 때 재미있는 취미 갖기를 이야기했다.
"태섭아 너는 앞으로 간호사 하면서 목표가 뭐니?"
"네. 저는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체력 키우기를 말하려다가 면담 직전에 ‘환타’라고 놀리고 간 선생님이 생각났다. (에레렐렐레 저기 환타 지나간데요~) 나에게 다른 목표는 사치였다. 처음 들어 본 대답이 신선했는지 파트장님이 엄청 웃었다. "아니야 태섭아 너랑 다 일하고 싶어 해!" 간호사 전체 인계를 할 때도 "태섭이 목표는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가 되는 거래! 다들 태섭이랑 같이 일할 때 좋지?" 라며 계속 웃으셨다.
파트장님 저 할 말이 있습니다.
마이 드셨습니다.. 고마 해주세요..
몇 년 후 내가 좋아했던 환타는 이제 사라졌다. 특히 출근 전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느끼듯 의도적으로 피한다. 어느새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고맙기도 하다. 어쩌면 '환자를 탔던' 덕분에 아직까지도 간호사를 하고 있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을 보는 게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누구보다 일이 빨리 늘었다. 점점 환자를 보는 게 익숙해졌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갖고 단단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헬스 할 때도 처음에는 힘들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무게도 늘고 근육도 커진다. 돌이켜보면 ‘환자를 타던’ 순간도 똑같다. 내 능력을 커지게 만들어 준 고마운 순간이다. 이제는 어렵거나 안 좋은 환자가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 운이 좋아진 건지 내공이 쌓인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난 이제 ‘환타’가 아니다.
이제 병원에서 '환타' 주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게요.